[데스크 칼럼] 대긴축의 시대, 한국의 영악한 카나리아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시장은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풀면서 전례 없는 유동성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풀었던 돈을 회수하는 시기가 온다. 수많은 경고음에도 불구 모두가 애써 외면했던 그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눈앞에 어른거렸던 회색코뿔소가 다가오자, 곧바로 대긴축의 시대로 전환했다.
탄광 속 카나리아라는 말이 있다. 탄광 속 카나리아란 위험을 예고하는 조기 경보를 뜻한다. 과거 광부들이 탄광의 유해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라는 새를 놓아두고, 이상 행동을 하면 탈출 경고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
유동성 잔치를 벌이는 와중에 미국에서는 카나리아가 반복해서 울었다. 지난해 5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금리 인상을 언급했다. 당시 옐런 장관은 “경제가 과열되지 않게 하려면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한다”고 했다. 막대한 재정 지출로 실물 경제가 과열되자, 옐런 장관이 시장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같은 해 11월에는 리처드 클래리다 전 연준 부의장이 미국 경제 회복과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긴축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간 값싼 돈 세례에 환호하던 코스피지수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휘둘리며 연초부터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13년만에 1400원대로 뚝 떨어졌다. 미국이 달러를 거둬들이면 한국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있으리란 것은 누구나 예상해왔다.
과거에도 긴축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돈을 풀어대던 미국은 2015년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그해 12월 9년 만에 금리를 0.25% 올렸고, 이후 9차례 금리 인상을 통해 2~2.25%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이 과정에서 신흥국과 선진국 간 통화 양극화 현상도 심화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강달러(달러화 강세) 현상을 필연적으로 부른다. 강달러는 신흥국의 채권·통화 등 자산가치를 떨어트리고, 부채 부담을 가중시킨다. 위기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비롯됐지만, 이들은 돈을 풀어 위기를 극복했고 그로 인한 피해는 신흥국이 감당한 것이다.
실제 당시 인도와 태국, 대만 그리고 남미 등에서 수백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특히 신흥국 통화 가치는 2015년 대비 2016년에는 20%가량 떨어져 ‘강달러’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번 긴축은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 통화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특정 국가의 위기는 결국 세계 경제에 충격으로 돌아온다. 이미 세계 각국은 강달러로 인해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파운드가 달러 대비 역사상 최저로 붕괴하자 영란은행이 국채 매입을 시작했다. 일본도 연초 대비 20% 넘게 하락한 엔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시장 개입을 공식화했다. 중국은 위안화가 14년 만에 최저로 내려와 환율이 7.2위안을 기록했다.
한국 역시 긴축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장 부동산·가상화폐 ‘빚투족(빚내서 투자)’과 활황장에 뛰어든 주식 투자자들은 자고나면 오르는 금리에 신음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던 기업들도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처지다.
카나리아가 미국에만 있어서 경고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2030세대들의 부동산 구매를 장려하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난해 연말 미국의 금리인상이 선반영된 악재라며 경고음을 애써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적어도 주식시장에서 만큼은 카나리아들이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게임회사인 데브시스터즈의 김종흔 공동대표는 스톡옵션 행사로만 475억원을 챙겼다. 같은 달 하이브 윤석준 글로벌 CEO도 스톡옵션 행사후 주식을 매각해 247억원을 벌었다. 올 1월에는 카카오페이 류영준 전 대표 등 당시 경영진 8명이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매각해 약 800억원이 넘는 차액을 남겼다. 이들 경영진은 모두 고점에서 회사 주식을 매도했다. 현재 이 회사들의 주가는 고점에서 30%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다.
한국의 카나리아는 영악하게 행동으로 보여줬고, 홀로 살길을 찾아 날아갔다. 미국의 카나리아보다 위기를 노골적으로 경고했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김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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