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황제 도피

최원규 논설위원 2022. 10. 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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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사 ‘단골손님들’ 사이에 떠도는 불문율 중 하나가 ‘일도(一逃) 이부(二否) 삼백’이다. 일단 걸리면 튀고, 잡히면 부인하고, 그것도 안 되면 ‘백(back)’을 쓰라는 것이다. ‘일도’ 중에서도 으뜸은 해외 도피다. 하지만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 강남 부유층을 상대로 모은 곗돈 수십 억원을 들고 2009년 해외로 도피한 60대 여성도 돈에 쪼들려 8년 만에 자진 귀국했다. 여러 나라 전전하다 재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개중엔 호화 도피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2010년 조세포탈죄로 재판을 받다가 해외로 도피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뉴질랜드에서 한동안 호화 생활을 누렸다. 호화 요트를 타고 낚시를 즐겼고, 카지노에도 VIP 회원으로 출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압박에 결국 4년 만에 귀국해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벌금을 노역으로 때우려다 ‘황제 노역’이란 비난이 일자 224억원의 벌금을 완납하기도 했다. 낼 돈 다 낸 셈이다.

▶붙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07년 횡령 혐의로 재판받다가 도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4조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을 저지르고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 등이다. 그런데 두 사람도 끝이 좋지 않았다. 여러 나라를 거쳐 에콰도르에 정착한 정 전 회장은 가짜 신분증을 사용하며 추적을 피했지만 결국 도피 11년 만에 숨졌다. ‘외국인 무연고자 사망’으로 처리됐고, 장례 비용은 약 100만원이었다. 조희팔도 도피 3년 만에 중국 호텔방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졌다고 한다. 언제든 잡힐 수 있다는 불안이 있었을지 모른다.

▶쌍방울그룹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5월 해외로 도피한 김성태 전 회장이 여성들을 자기 도피처로 수차례 오게 했다고 한다. 조폭 출신이자 쌍방울 실소유주로 알려진 그가 회사 직원에게 연락해 서울 강남의 고급 유흥업소, 이른바 ‘텐프로’ 룸살롱 여성 종업원을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한식과 횟감을 공수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상상을 넘는 ‘황제 도피’다. 검찰로선 농락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검찰은 그의 여권을 무효화하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해외 도피 사범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사실상 이것밖에 없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 뒤 그물 망을 쳐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니 가짜 신분을 사용하거나 외진 곳에 숨으면 잡기가 쉽지 않다. 김 전 회장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검찰은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김 전 회장 도피의 결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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