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청년은 난방비를 아끼려 팬티스타킹을 입었다

이영관 기자 2022. 10. 1.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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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눈감지 마라

이기호 | 마음산책 | 320쪽 | 1만5000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다. ‘박정용’과 ‘전진만’. 지방대를 졸업한 이들에게 남은 건 대출 학자금 빚뿐이다. 둘은 월세 30만원짜리 방에서 같이 산다. 뷔페, 편의점, 택배 상하차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한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팬티스타킹을 입는다. 그럼에도 가난은 이들의 삶을 더 옥죈다. “남들은 몇 억원씩 되는 아파트를 영혼까지 끌어 마련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진만의 영혼은 과연 어떤 영혼인가? 무슨 다이소 같은 영혼인가?”

결국 가난이 영혼을 좀먹는다. 집주인이 보증금 500만원을 올려달라고 요청한다. 정용은 돈을 보태지 못하는 진만에게 말한다. “무슨 거지새끼도 아니고.” 진만은 집을 떠난다. 가난한 처지가 서로에게 위로가 됐지만, 끝내 가난 때문에 함께할 수 없게 됐다. 소설에는 고사리를 파는 할머니, 딸과 떨어져 사는 아버지 등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눈감고 싶은’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정용과 진만을 중심으로 5년 동안 쓴 짧은 소설 49편을 모았다. ‘지방 청년들이 힘들다’며 말뿐인 위로를 건네는 책은 아니다. 작가는 “보편적인 ‘지방’과 ‘청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각기 다른 지방과 각기 다른 청년만 있을 뿐이다”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누군가를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눈감지 마라”고 말하며 차가운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눈을 떴을 때 비로소 보인다. 함께 모여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말동무는 될 수 있다는 것. 추운 겨울 살 맞대며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작가는 가난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연대’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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