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89] Translators live life by proxy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디덜러스’ 3권 발매에 앞서 전 세계 담당 번역가들이 프랑스로 모인다. 출판사 대표 옹스트롬(램버트 윌슨 분)은 모처에 있는 대저택 벙커에 번역가들을 격리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채 동시 번역을 진행할 생각이다. 그리스어 번역가 케트리노스(마놀리스 마브로마타키스 분)는 벙커에 도착해서도 출판사의 제안이 탐탁지 않다. “이따위 걸 생매장당한 채로 번역하라고? 종말이 따로 없군.(Buried alive to translate this shit? It really is the apocalypse.)” ‘다빈치 코드’ 3편 ‘인페르노’ 번역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한 영화 ‘9명의 번역가(The Translators∙2022∙사진)’의 한 장면이다.
사전 유출을 우려한 처사라고는 하나 출판사는 애초에 번역 작업 따위 그리 존중할 생각이 없다. 독일어 번역가 잉그리드(안나 마리아 스텀 분)는 번역가들만이라도 원작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문장의 질과 관련된 일이에요.(It’s about the quality of the text.)” 하지만 옹스트롬은 “디덜러스의 질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The quality of Dedalus is irrefutable.)”라며 일축한다. 원작이 훌륭한 이상, 번역이야 어떻든 작품의 질엔 영향이 없다는 오만, 혹은 무지.
그렇게 동시 번역이 시작된 첫날, 옹스트롬에게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디덜러스 3권의 첫 10장은 이제 당신 것이 아니다.(The first ten pages of Dedalus Book III are no longer yours.)” 돈을 보내지 않으면 원고를 유출하겠다는 협박 메일이다. 옹스트롬은 자연스레 번역가들을 의심한다. “번역가는 대리인의 인생을 사니까.(Translators live life by proxy.)” 개인적인 앙심을 품었을 거라는 의심. 과연 범인은 이 중에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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