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폐허에서 살아가기
한 달 가까이 지났고 직접 본 것도 아니지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태풍 힌남노가 덮쳤을 때 포항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난 참극이다. 중학생 소년과 엄마의 사연은 이미 전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다. 모자는 아침 일찍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길 수도 있으니 자동차를 지상으로 옮겨달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을 듣고 지하로 내려갔다. 차가 엉켜 기다리는 사이에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서 물이 차기 시작했고 위기가 닥쳤다. 수영을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보낸 뒤 파이프에 매달려 에어포켓에서 살아남았지만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입구 쪽으로 헤엄쳐간 아들은 끝내 숨졌다.
그 짧은 순간은 너무 비극적이다. 물론 세계에는 수많은 비극과 죽음이 흘러넘치지만, 지하주차장의 참극은 평온하던 일상의 장막을 찢고 불현듯 출몰하는 비극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섬뜩하다. 이들은 서울의 반지하에 살던 여성 노동자 가족처럼 예측된 위험에 노출된 상태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엄마와 이별하는 순간, 소년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나왔다는 것 역시 특별하다. 그 이후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나는 그 엄마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 아파트 주민들이 얼마나 트라우마에 시달릴지 궁금하고 마음이 쓰인다.
최근 철학계는 이 같은 자연의 출몰에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휴머니즘 혹은 인류세의 철학이다. ‘인간 세계는 사물에 뿌리를 두고 있다’(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세계는 인간의 사유나 의식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퀭텡 메이야수, <유한성 이후>), ‘인간은 지구와 대기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파울 크뤼천, <인류세>), ‘인간은 지질학적 행위자가 되어 자신의 생존 조건을 교란시키고 있다’(디페시 차크라바티, <역사의 기후>), ‘존재한다는 것은 항상 공존하는 것이다’(티모시 모튼, <생태적 사고>), ‘인공세계의 구축을 통해 자연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산업혁명 이후로 우세하게 되었다’(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 한마디로 인류세란 인공과 자연이 뒤섞이는 시기이다.
이 때문에 생물권(biosphere)이라는 말은 기술권(technosphere)이라는 말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1500만종의 생물이 무기물과 더불어 생태계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전통적인 화석 분류 방식으로 계산할 때 10억종이 넘는 인공물이 생물권에 뒤섞여 초거대한 존재의 사슬을 만들고 있다.
비닐봉지에 목이 졸린 거북이에게 비닐이 천적이라면, 부표로 쓰인 스티로폼에서 살아가는 따개비에게 스티로품은 공생의 대상이다. 현재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양은 지구 면적 1㎡당 50㎏에 이른다고 한다. 안정된 날씨에서는 뚜렷하고 단정하게 경계지워진 자연과 인공물이 재난이 닥치면 경계를 훌쩍 넘어 서로 엉겨붙는다.
최근 읽은 책 <인류세의 철학>(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음, 조성환 외 옮김, 모시는사람들)에서 저자는 인류세의 장면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폐허를 담아낸 가와우치 린코의 사진집 <빛과 그림자>를 소개한다. 사진은 집과 도로, 집기가 산산이 부서져 이리저리 나뒹구는 폐허를 담았다.
보통 관객들의 눈에 이 사진들은 분명 처참한 비극의 현장이며 자연이 할퀴고 간 상처, 비극을 잊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치워야 하는 쓰레기, 사고가 나기 이전 말끔한 상태로의 복구 대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이 장면에서 경쾌함, 투명함, 청정함, 적막감 등을 느꼈으며 인간세계의 족쇄로부터 해방된 듯한 자유로운 분위기마저 느꼈다고 한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던 문명의 허상을 깨닫고, 새로운 감각으로 진리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는 뜻이다.
폐허에서 살아가기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리의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 1·2가 폭발해 전 세계 연간 탄소 배출량의 3분의 1인 50만t 의 메탄가스가 대기로 방출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파키스탄에서 몬순기후 이상으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긴 참사만큼 대형의 재난이다.
이제 자연재해는 인공물로 인해 가중되는 사회적 재난과 합쳐져 구조적 재난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위험사회임을 실감하게 된다. 가을 하늘은 청명하고 수해 소식은 곧 잊히겠지만, 좀 더 예민한 감각으로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문명은 분명 감각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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