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인아]글로 쓰지 않은 생각은 날아간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2022. 10. 1. 03:01
나만의 생각 기록 않고 흘려보낸 것 후회
글쓰기는 자신과 마주하며 언어 다듬는 시간
타인과 글로 연대하면 불안-외로움도 사라져
글쓰기는 자신과 마주하며 언어 다듬는 시간
타인과 글로 연대하면 불안-외로움도 사라져
살면서 후회되는 게 많지만 가장 큰 후회는 글을 쓰지 않은 것이다. 실은, 늘 뭔가를 쓰긴 했다. 광고회사 시절엔 카피를 썼고 기획서를 썼고 프레젠테이션 스크립트를 썼다. 책방을 연 후엔 콘텐츠 기획서를 쓰고 출판사와 저자에게 보낼 e메일을 쓰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릴 피드를 썼으며 청탁받은 칼럼을 썼다. 나는 항상 뭔가를 부지런히 썼다. 하지만 당장의 필요나 시간의 압박이 있지 않은 경우는 쓰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여러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왔고 그중 어떤 생각들은 그대로 받아 적으면 완성도 있는 문장이 될 만큼 숙성된 생각이었지만 글로 쓰지 않은 생각들은 얼마간 내 안에 머물다 그저 날아가 버렸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어느 유명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은 향기와 같아서 그 순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나는 ‘괜찮은’ 생각들을 날려 버린 것에 대해 이제 와 강하게 후회한다.
얼마 전 우리 책방은 정지우 작가를 초대해 ‘글쓰기’ 주제로 북 토크를 열었다. 글 잘 쓰는 법이 아니라 글쓰기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내게 침입하는 평가의 기준들과 싸우는 일이라고. 작가가 하려는 말을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는데 딴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말했을 것 같다. 자기 성찰 내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쯤으로. 그는 그런 ‘보통의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말했고 그것은 말과 글에 예민한 나의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신입사원들을 면접하던 때가 생각난다. 해마다 이맘때면 회사는 신입사원 공채를 했고 서류 전형과 필기시험, 실무자 면접 등 몇 차례의 테스트를 통과한 지원자들이 마지막 단계로 임원 면접을 볼 때 나는 면접관이 되어 그들과 만났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꽤나 에너지가 드는 일이어서 하루 20여 명씩 며칠간의 면접을 마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곤 했다. 면접엔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허용된 면접 시간은 15분쯤으로 다 같은 조건이었음에도 어떤 사람에겐 유독 끌렸다. 대다수는 의례적인 질문 정도로 넘어갔지만 어떤 이는 조금의 생각이라도 더 듣고 싶어 이리저리 더 질문했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거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나 ‘They say’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거라고.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매일 자신에게 침입하는 평가의 기준들과 싸우는 일’이라는 답을 내놓는 작가처럼 말이다.
서울에서의 바쁜 직장 생활을 접고 가족 모두 제주로 간 후배가 있었다. 그리로 간 지 몇 달 후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서울에선 봄이 가고 여름이 갔는데 제주에선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고. 나는 이 말도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했다. 일에 치여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 보면 봄이 오는지 가을이 오는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러다 봄의 끝자락에 가서야 ‘꽃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봄이 가는구나’ 하며 아쉬워한다. 반면, 제주에서의 느릿한 생활에선 하늘도 올려다보고 봄 나무에 시선을 줄 수도 있었겠다. 그러자 막 움을 틔우려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아, 봄이 오려나 보다’라고 느끼며 봄의 앞모습을 보는 거다. 후배가 이때의 느낌을 글로 쓰지 않았더라면 그 강렬한 체험도 곧 휘발되었을 테고 내가 크게 공감해 지금까지 기억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다 글로 써서 남긴 덕분이다.
3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새삼 알아차린 게 있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도 사회적 동물이며 같이 놀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사회적 존재들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지 않으면 외롭다는 것. 이때 글쓰기야말로 외로움을 다루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임을 여러 작가들로부터 듣는다. 안쪽의 생각을 글로 써 꺼내 보였는데 좋다 해주는 이를 만나면 외롭고 불안했던 마음이 환해지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얼마 전 어느 기업과 진행한 글쓰기 클래스의 타이틀에 이렇게 적었다. 글 쓰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훗날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 내 안의 생각들을 더 이상 가뭇없이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꼭꼭 글로 써야겠다. 외롭기 쉬운 계절, 당신도 무엇이든 써보면 좋겠다.
얼마 전 우리 책방은 정지우 작가를 초대해 ‘글쓰기’ 주제로 북 토크를 열었다. 글 잘 쓰는 법이 아니라 글쓰기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내게 침입하는 평가의 기준들과 싸우는 일이라고. 작가가 하려는 말을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는데 딴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말했을 것 같다. 자기 성찰 내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쯤으로. 그는 그런 ‘보통의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말했고 그것은 말과 글에 예민한 나의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신입사원들을 면접하던 때가 생각난다. 해마다 이맘때면 회사는 신입사원 공채를 했고 서류 전형과 필기시험, 실무자 면접 등 몇 차례의 테스트를 통과한 지원자들이 마지막 단계로 임원 면접을 볼 때 나는 면접관이 되어 그들과 만났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꽤나 에너지가 드는 일이어서 하루 20여 명씩 며칠간의 면접을 마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곤 했다. 면접엔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허용된 면접 시간은 15분쯤으로 다 같은 조건이었음에도 어떤 사람에겐 유독 끌렸다. 대다수는 의례적인 질문 정도로 넘어갔지만 어떤 이는 조금의 생각이라도 더 듣고 싶어 이리저리 더 질문했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거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나 ‘They say’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거라고.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매일 자신에게 침입하는 평가의 기준들과 싸우는 일’이라는 답을 내놓는 작가처럼 말이다.
서울에서의 바쁜 직장 생활을 접고 가족 모두 제주로 간 후배가 있었다. 그리로 간 지 몇 달 후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서울에선 봄이 가고 여름이 갔는데 제주에선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고. 나는 이 말도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했다. 일에 치여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 보면 봄이 오는지 가을이 오는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러다 봄의 끝자락에 가서야 ‘꽃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봄이 가는구나’ 하며 아쉬워한다. 반면, 제주에서의 느릿한 생활에선 하늘도 올려다보고 봄 나무에 시선을 줄 수도 있었겠다. 그러자 막 움을 틔우려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아, 봄이 오려나 보다’라고 느끼며 봄의 앞모습을 보는 거다. 후배가 이때의 느낌을 글로 쓰지 않았더라면 그 강렬한 체험도 곧 휘발되었을 테고 내가 크게 공감해 지금까지 기억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다 글로 써서 남긴 덕분이다.
3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새삼 알아차린 게 있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도 사회적 동물이며 같이 놀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사회적 존재들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지 않으면 외롭다는 것. 이때 글쓰기야말로 외로움을 다루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임을 여러 작가들로부터 듣는다. 안쪽의 생각을 글로 써 꺼내 보였는데 좋다 해주는 이를 만나면 외롭고 불안했던 마음이 환해지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얼마 전 어느 기업과 진행한 글쓰기 클래스의 타이틀에 이렇게 적었다. 글 쓰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훗날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 내 안의 생각들을 더 이상 가뭇없이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꼭꼭 글로 써야겠다. 외롭기 쉬운 계절, 당신도 무엇이든 써보면 좋겠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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