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산업 진실 풀어내며 청결의 의미 탐구

박성준 2022. 10. 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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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샴푸 끊은 의사 출신 언론인
피부 좋아지고 나쁜 냄새 사라져
비누의 부작용·화장품 과대광고
취재와 연구 통해 신랄하게 비판

거품의 배신/제임스 햄블린/이현숙 옮김/추수밭/1만6000원

“샤워를 하지 않은 지 5년째다”로 시작하는 이 책의 원제는 ‘클린(Clean)’. 위생 산업의 진실에 대해 심도 있게 풀어내며 ‘청결’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본다. 피부 건강부터 환경 이슈, 그리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련 산업의 역사, 과학적 근거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다룬다.
비눗방울 같은 21세기 화학 물질이 우리 피부를 닦아내며 미생물 서식지를 파괴하는 일을 잠시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존 베스트셀러 ‘거품의 배신’은 과학적인 연구와 취재로 위생 산업의 진실을 소개한다. 세정제, 화장품 등의 상품과 직접 연관된 피부 건강과 청결에 대한 인종, 계급, 성별 등 차별의 역사, 잘못된 소비를 부추기는 산업 비리를 폭로하며 거품 속에 살지 않고도 위생적이며 건강한 피부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
“가끔 머리를 감기는 하지만 샴푸나 컨디셔너는 쓰지 않고, 손 씻을 때를 빼고는 비누도 쓰지 않는다. 깔끔해 보이려고 사용하던 각질제거제와 보습제, 체취방지제 같은 것도 끊었다. 모두에게 나처럼 하라고 권할 마음은 없다. 이것저것 따지려니 힘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덕분에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믿기 힘든 기행(奇行)의 주인공은 의사 출신 언론인. 처음부터 피부 건강을 생각해서 벌인 일은 아니었다.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고소득이 보장된 의사 생활은 관두고 구직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제적 이유로 카페인과 술을 줄이고 유선방송과 인터넷을 끊듯 샴푸와 비누에 들이는 큰돈을 줄이려는 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제품 사용을 서서히 줄이면서 몸에 생겨난 변화는 놀라웠다. 피부는 서서히 기름기가 줄었고 습진도 덜 생겼다. 나쁜 냄새가 나는 일도 생활 습관이 관건이었다. “피부에 뭐가 나거나 냄새가 날 때는 보통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수면 시간이 부족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와 겹쳤다.”

공중위생학 학위를 받았고 예방의학과 레지던트 수련을 마친 저자는 ‘순수한 청결’을 강조하며 성장한 비누 산업의 모순을 드러낸다. 지나친 항균 세정제 사용이 일으키는 피부 문제와 화장품 산업의 과대 광고 실체 등을 심도 있는 취재와 연구를 통해 신랄하게 폭로한다. 르포 형식으로 ‘K뷰티’를 앞세워 세안제, 토너, 보습제, 마스크팩 등 최소 열 단계 이상의 절차에 따라 피부를 관리해주는 유명 피부 관리 업체를 방문하는 데서 청결의 뒷면을 살펴보는 여정은 시작된다. 거품 없이 살던 저자는 피부 관리 업체에서 직접 시술을 받는 과정을 소개한 이후 피부과 의사, 미생물학자, 알레르기 전문의, 면역학자, 미용사, 비누 애호가, 벤처 자본가, 신학자 그리고 정직을 가장한 온갖 사기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청결의 의미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탐구한다.
제임스 햄블린/이현숙 옮김/추수밭/1만6000원
청결의 역사에 대한 충실한 탐색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대 비누의 계보를 정리한다. “순수해서 물에 뜨는 비누”라는 환상을 만든 아이보리에서 팜올리브 그리고 도브, 럭스로 이어지는 대표적 비누 제품의 탄생과 치열한 마케팅 전쟁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과도한 세정업계 마케팅 경쟁은 의학과 결합하면서 특별한 성분에서 만들어지는 장밋빛 효과를 강조하는 홍보전으로 이어진다. ‘펩타이드’가 대표적 사례다. 저자가 만난 피부 전문가는 잘못된 정보가 가장 많은 성분으로 펩타이드를 지목한다. 모호한 화합물인데 이를 넣은 제품은 리바이털라이징, 리주버네이팅, 안티에이징 등의 문구로 홍보된다. 그러나 광고 문구를 증명하기가 극히 어렵고 크림이나 세럼에 첨가되면 다른 성분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피부에 잘 스며들지도 않는다는 게 숨겨진 사실이다. 저자는 급기야 미국 보건당국이 승인한 성분을 조합해서 50g 한 병에 200달러라는 높은 가격을 책정한 화장품까지 직접 만들어 파는 실험을 한다. 단단한 안전을 강조하는 행정당국 규제가 화장품에는 얼마나 허술한지 입증하기 위해서다.

“화장품은 법률상 식품이 아니다. 특정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한다고 주장할 수 없어서 규정상 약품과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판매자들은 자신의 화장품이 건강을 개선하고 유지한다고 광고하며 판매할 수 있고 약품처럼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건 ‘건강한 삶을 위한 미니멀’과 피부 생태계의 복원이다. 그는 우리의 청결 기준 대부분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건강에 덜 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피부 습진, 아토피 행진에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몸을 둘러싼 피부와 모공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조 개의 미생물 생태계, 즉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이 존재한다. 그들은 피부의 가장 바깥층과 같으며 여드름, 습진, 건조한 피부에서 냄새를 맡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스킨 케어란 이 미생물이 우리 피부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와 이야기했던 모든 미생물학자는 위생 관념 자체보다 항생제 남용이 사람의 피부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엉망으로 만든 주원인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샤워를 줄인다고 마이크로바이옴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이 나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 지구상에서 미생물이 아닌 생명체 전부를 위협하는 ‘슈퍼버그’ 미생물을 만들어내는 항균 제품을 덜 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결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지나치게 자만해서 생긴 결과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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