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소모적 정쟁 중단하고 핵 안전판 마련 시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전쟁의 위기까지 고조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핵보유국들이 실제로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냉전기에는 핵전쟁이 터지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상호확증파괴(MAD)’의 게임 논리에 따라 미·소 양국은 자제했다. 핵은 상대국의 도발을 ‘억지(deterrence)’하는 것이 효용 가치였지, 실제로 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 유럽지역에 국한해서 전술핵 사용을 통한 제한적 핵전쟁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 전면전의 가능성을 실감한 미·소는 그 위험을 줄이려 여러 군비감축 협정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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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김정은 공공연히 핵전쟁 위협
통제불능 상황 빠져들 위험성 커져
지금 우리의 경제·안보상황 심각
외교 강화하고 민심 한군데 모아야
」
그런데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밀리면서 푸틴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핵 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시 “우리들의 진로를 막으려는 어떤 국가도 이제까지 역사에서 전혀 목도하지 못했던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핵무기 사용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제까지는 국내에서 반전여론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려고 주로 외곽 지역에서 돈을 주고 용병을 모집하면서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부분적 동원령을 내렸고 이는 강력한 국내 반발을 낳았다. 결국 푸틴은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9월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는 영토 주권을 위협받을 경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면서 또다시 핵 사용을 위협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하면서도 줄타기를 해 왔다. 우크라이나에 고성능 무기를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나 에이태큼스(ATACMS)와 같은 300㎞ 사정거리의 지대지미사일 제공도 확전을 우려해 거부했다. 그러면서 여러 채널로 러시아 당국에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경고를 전달해 왔다.
그런데 미국 정계의 적지 않은 인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나치게 조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의 조심성을 러시아 측이 역이용해서 선제적 핵 사용 전술을 시도할 빌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선제사용하여 겁을 주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보복하지 못하고 물러설 것이라고 오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강하게 나가면 ‘강’대 ‘강’이 부딪치는 통제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심각성과 위험이 존재한다.
문제는 한반도에서도 이러한 위험한 핵 게임의 전조가 보인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핵 선제 불사용의 의지를 법령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올해 4월에는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기념식에서 핵심이익을 수호하지 못하게 되는 다섯 가지 상황에서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핵 독트린을 발표하고 법제화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북의 핵 위협에 확장억제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한·미·일 3국 대잠수함 훈련이 그 사례다. 그와 동시에 북에 대해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북은 대화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북의 핵 선제사용 협박, 확장억제 강화, 북의 도발 고도화라는 악순환의 사이클만 남게 된다. 다시 말해 통제불능 상황, 즉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빠져들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러시아가 핵을 선제 사용하여 전쟁목표를 달성하고 그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핵 사용이 터부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린다면? 이는 심리적으로 북한 수뇌부에게 대단히 잘못된 시그널을 던져 줄 것이다. 북의 핵 위협에 힘이 더 실리고 천안함 공격 때처럼 재래식 도발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지금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상황도 이처럼 심각하다. 모든 지략과 에너지를 모아 현 상황의 위험요인을 제거하려 노력하고, 다양한 전략 전술을 동원해 안전판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리고 우리를 받쳐 줄 외교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민심을 한군데로 모아야 할 위기 상황이다. 부디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을 그치고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본분에 충실해 주기를 기원한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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