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쿳'으로 접신 가짜 무당 "굿 퍼포먼스는 종합예술"

유주현 입력 2022. 10. 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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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민요소리꾼 추다혜
두산아트센터 기획공연 ‘광-경계의 시선’을 공연중인 추다혜. [사진 두산아트센터]
‘무속’이 혐오의 의미로 통하는 시대에 대놓고 ‘가짜 무당’을 자처하는 여인이 나타났다. 록밴드 프런트맨 같은 차림으로 머리엔 제사장처럼 장식을 꽂고, 구성진 민요 목으로 접신한 듯 무당굿을 한다. 똑부러진 발성과 딕션으로 시침 뚝 떼고 객석을 쥐락펴락하는 걸 보면, 끼로 똘똘 뭉친 ‘천상 광대’다.

민요소리꾼 추다혜(37)는 서도민요(평안도와 황해도 지방 민요)를 전공했지만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아티스트로,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등과 함께 민요 록밴드 씽씽으로 활동했던 국악계 셀럽이다. 2017년엔 BTS보다 먼저 음악 마니아들의 성지와 같은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해 글로벌 화제가 됐었다. 2019년엔 무가(巫歌)와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 ‘펑쿳’(펑키한 굿) 또는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 음악을 하는 그룹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하고 첫 앨범 수록곡 ‘리츄얼 댄스’로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BTS보다 먼저 미국 NPR 방송 출연

두산아트센터 기획공연 ‘광-경계의 시선’을 공연중인 추다혜. [사진 두산아트센터]
그런 그가 지난해 두산아트센터가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뽑은 ‘DAC 아티스트’에 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혀 전혀 새로운 장르의 무대를 스스로 창작했다. 29일부터 10월 12일까지 공연되는 ‘광-경계의 시선’이다. 무당의 삶을 소재로 한 원맨쇼인데, 판소리처럼 이야기와 노래를 오가지만 노래는 민요와 팝 발성을 오가고, 밴드가 반주와 추임새를 담당한다.

“민요와 무가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뮤지컬 느낌의 노래도 섞어 구성해 봤어요. 민요가 가진 정서의 한계가 있거든요. 가사가 표현하는 맛도 다르고요. 밴드사운드를 더 낼 수 있는 형식으로 과감한 시도를 해본 건데, 장르를 정하고 싶진 않아요. 캬바레 연극이라 하자니 ‘연극’이 걸리고, 콘서트라고 하자니 스토리가 있고, 1인극이라고 하자니 밴드와 함께 하는 음악이니까요. 관객들이 보시고 난 이후에 이름 짓고 싶어요.”

노래가 먼저냐 극이 먼저냐 물으니 “스스로 뮤지션이라고 한계 짓지 않고 배우와 보컬을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데, 알쏭달쏭하다. 비유하자면 그는 ‘굿’이라는 희귀한 재료로 창작요리를 만드는 파인다이닝 셰프와 같다. 특이하게도 굿을 처음 만난 건 프랑스에서다. “안은미 선생님이 기획하신 공연을 하러 프랑스에 갔을 때, 참가 팀 중에 이찬엽이란 무당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굿이란 걸 봤는데, 무당이 노래를 너무 잘하더군요. 소리가 너무 날것이라 충격적인데, 퍼포먼스를 보니 종합예술이다 싶고요. 춤도 추고 말도 하고 노래도 부르니까요. 무당이 예술가란 걸 깨달았고, 배워보고 싶었죠.”

그는 서도민요를 전공했지만 ‘이수자’는 아니다. 자신의 활동에 무형문화재에게 전수받았다는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아서란다. 발성도 전통에서 스스로 체화시킨 자기만의 소리를 낸다. “연기를 배우면서 소리의 폭이 넓어져 있었어요. 첫 소리는 민요 목이었지만, 음악극을 하고 다양한 발성을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취해도 되는구나. 선생님 소리만 따라할 게 아니라 내 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해왔죠. 무가도 내가 살리고 싶은 부분을 체화시키고, 밴드와 접점을 찾아서 완성한 소리예요.”

최근 국악이 핫해지면서 대중이 좋아할만한 친절한 공연이 많아졌지만, 그런 흐름과는 동떨어진 행보다. 무당서사에 열광할 대중이 있을까. “저는 늘 대중적이지 않은 걸 했거든요. 판소리보다 마이너한 민요를 했고, 경기민요보다 마이너한 서도민요를 했죠. 처음부터 마니악한 것을 해와서 자연스러워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죠. 무가를 배우면서 무당의 인생을 살짝 엿보게 됐는데, 사람들에게 얘기해 보고 싶은 것이 생겼어요. 내가 느낀 무당은 예술가인데 왜 아티스트로 존중받지 못하나, 어떤 부분이 소외되게 만들었을까, 왜 이런 인생을 살게 됐을까. 호기심에서 비롯된 생각들이 쌓이다 보니 관객들에게 공연으로 만들어 전달하고 싶어졌죠.”

그는 무가의 매력이 그 안에 담긴 위로의 메시지와 영성이라고 했다. 굿이라는 전통을 스타일리시하게 차용하려는 게 아니라, 굿의 본질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얘기다. 이번 공연에서 그가 관전포인트로 꼽는 ‘아는 사람’이라는 곡도 잔잔한 발라드풍, 위로의 노래다. “굿이라는 게 사람을 달래주는 의미가 있잖아요. 소원과 열망의 전달자로서 행위하는 음악에 치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도 무당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너무 특별하게 여겨지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멀리하게 되는, 소외된 사람인 거죠. 사실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아는 사람으로서 편안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경계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위안 받는 사람들도 있으면 좋겠고요.”

샤먼 장식, 매혹적인 비주얼 컨셉트

두산아트센터 기획공연 ‘광-경계의 시선’을 공연중인 추다혜. [사진 두산아트센터]
사실 그에게 강한 인상을 받은 건 지난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제작한 뮤지컬 ‘금악’에서다. 금지된 욕망을 상징하는 초월적인 존재 ‘갈(葛)’을 표현하는 카리스마가 남달랐는데, 어린 시절부터 무대 배우가 꿈이었단다. 배우가 될 무기로 민요를 먼저 장착한 것도 별스럽다. 그후 연기를 전공하면서 전통 소재 창작연희극을 만들어 활동했다.

‘씽씽’ 멤버가 된 건 대학 동기인 ‘오방신’ 이희문의 공연 ‘쾌’에 참여하면서다. “그 공연을 같이 했던 장영규 감독이 가볍게 ‘밴드 한번 해볼래?’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독특한 컨셉트가 화제가 됐지만, 누가 연출한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하는 프리스타일이었어요. 그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너무도 개성적인 아티스트들의 집합체였던 탓에 4년여 만에 해체했지만 ‘씽씽’ 활동으로 발견한 게 많다. “밴드 사운드가 이렇게 쫀득쫀득하고 나와 시너지가 맞는구나를 깨달았어요. 밴드와 나만의 색깔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민요의 재발견도 있었네요. 내가 서도소리를 참 좋아하는구나, 노래를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구나를 느꼈달까요. 보컬로서만 노래하는 건 아쉽고, 가사에 진정성을 담아 관객과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씽씽’ 이후 소리를 더 깊게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고, 다양한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가까지 확장된 것이죠.”

그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매혹적인 비주얼 컨셉트다. 무당의 모자에 달린 깃털이나 샤먼의 장식을 차용해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방울을 흔들며 깜짝 놀랄 만큼 전통적인 소리가 튀어나올 때 시쳇말로 ‘확 깬다’. “비주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컨셉트를 잡아요. 무당을 비롯해 외국의 샤먼들도 머리에 동물 깃털같은 헤드피스를 꽂고 있는 게 인상적인데, 제 나름대로 해석한 세련된 샤먼의 모습을 추구하는 거죠. 옛것과 지금의 것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걸 좋아해요. 중요한 건 전통 서도소리인데, 그 소리와 가사의 의미를 곱씹어서 거기에 기반한 제 해석을 담는 게 제 음악이에요. 그런 창작작업을 하면서 장르적으로 연기나 극작업으로 발전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콜라보를 할 수도 있겠죠.”

야구모자를 눌러쓰니 30대 중반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앳된 외모지만, 그는 자아가 아주 강한, 홀로 우뚝 선 당찬 아티스트였다. 1인 기획사를 차리고 독립예술가 추다혜로서, 또 밴드 추다혜차지스의 멤버로서 작곡과 프로듀싱을 비롯해 기획과 매니지먼트까지 혼자 감당하고 있는 그는 자칭 ‘소수민족’이다. 기획사의 이름도 ‘소수민족컴퍼니’다. 민요 목뿐 아니라 매력적인 팝 발성을 겸비하고도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은 것도 “굳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싶지 않아서”란다.

“오디션 프로그램 섭외가 많이 오는데, 방송에서 원하는 이미지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널리 인지도를 얻는 게 먼저라면 나갔겠지만, 저는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소수자의 취향이 다수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마니악한 음악을 해요. 내 취향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은 내 작업을 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매체의 힘은 잘 알고 있어요. 언젠가 때가 잘 맞아떨어지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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