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BTS와 종묘제례악

유주현 2022. 10. 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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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성대한 장례에 각국 정상이 모여드는데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찰스 3세는 측근에게 성질부리는 못된 얼굴을 노출한다. 이런 왕실을 왜 떠받드나 싶지만, 결국 21세기에도 내셔널 아이덴티티란 게 얼마나 굳건히 지켜야 할 가치인가를 보여 주는 반증이다.

왕실이 없는 우리는 어디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세우고 있을까 생각하니 국립국악원이 떠오른다. 최근 국악원이 베를린 필하모니홀 등 독일 4개 도시 주요 공연장을 돌며 종묘제례악을 선보여 20분간 커튼콜이 이어지는 대성공을 거둔 것은 전통예술의 존재의의를 웅변한다.(사진) BTS와 블랙핑크가 빌보드차트를 휩쓸고,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에 빙의한 연주로 콩쿠르를 우승하고, 케이팝 댄스가 유럽 길거리를 물들여도, 그것을 한국의 혼이라고 인식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진 국립국악원 @Daniel Dittus]
하지만 이런 문화유산은 현대사회에서 자칫 소멸하기 쉽고 그래서 보호받는다. 글로벌 톱스타 BTS에겐 그렇게 어려운 병역면제를 국악인들은 국내 콩쿠르 우승으로 비교적 쉽게 얻는 이유다. 대중문화인들은 국악이 그만큼 차별화 치트키가 되기에 적극적으로 콜라보를 시도한다. 서태지의 ‘하여가’를 시작으로 싸이의 ‘코리아’, 슈가의 ‘대취타’, 이날치의 ‘수궁가’, 서도밴드의 ‘사랑가’ 등 가장 똑똑한 뮤지션들 덕에 국악의 존재감은 확대일로다.

그런데 이런 때 아이러니하게 국악교육이 존폐 기로에 섰다.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을 두고 국악계와 양악계가 전쟁 중이다. 다수파인 양악계는 개정 시안에서 ‘음악의 보편성’을 내세워 국악 요소를 전면 축소하려 시도한다. 이에 국악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교육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양악계는 지난주 민형배 의원실 주최로 국회 토론회까지 열고 여론몰이를 통한 원안 굳히기에 들어갔다.

양악계는 음악교과서의 국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음악교육이 고사하고 있다며, 국악의 개념이 세계와 단절되어 있으니 세계의 다양한 음악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음악교육을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국악과 양악을 구분하지 말고 국악용어인 장단, 한배, 시김새 등을 리듬, 빠르기, 꾸밈음 등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 시안의 골자다. 교육부는 여전히 국악을 명시하는 방식에 대한 이견을 중재하고 있다는 입장이고, 국악계는 6일 도종환·민형배·유정주·오기형 의원실 주최 세미나로 맞불을 예고한 상태다.

자칫 ‘국악’이라는 단어가 학교에서 사라질 판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일진대, 국악을 국악이라 부르지 않고 고유한 용어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망각시키려는 뜻일까. 음악인류학자인 김희선 국민대 교수는 “장단과 리듬의 뜻이 다른데 리듬으로 통일하자는 양악계 태도는 일제 강점기 외래음악을 우월하게 여기던 사람들의 태도와 같다”며 “우리가 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배워야 하나. 한문 교과가 없어져 한자를 못 읽게 된 것처럼, 국악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사라진다. 교육과정이란 국가의 미래에 관한 일이다. 모처럼 국악 산업화가 논의 중인데 학교교육에서 빠져버린다면 다시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라고 일갈했다.

이 와중에 양악계 국회 토론회에 등장했던 발표 자료에 빵 터졌다. ‘100년 전 국악’과 ‘음악’을 대비시켜 놓고 종묘제례악과 BTS 사진을 각각 배치해 놓은 것이다(농악과 교향악단 등의 사진도 섞여 있다).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게 누구의 개념인지 보여 주는 듯하다. 독일까지 행차해 종묘제례악을 울린 건 이런 나라 안 무개념을 가리는 쇼윈도에 불과했던 걸까.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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