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당신이 꾸는 꿈이 곧 당신이다

허연 입력 2022. 10. 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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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핀천 (1937~)
"환상을 간직하세요. 달리 가진 게 없잖아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지존이자 살아 있는 신화
현대문학사를 통틀어 3대 은둔작가가 있다.

모두 베스트셀러를 낸 사람들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 D 샐린저, '좀머 씨 이야기'의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리고 '브이'를 쓴 토머스 핀천이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내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싫다며 뉴햄프셔의 시골로 들어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 영화 감독 엘리아 카잔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찾아갔을 때 "홀든('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이 싫어할 것"이라며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쥐스킨트는 사람들과 악수도 나누지 않고 남의 차에 절대 타지 않는 결벽증을 가진 은둔자다.

핀천은 이들보다 한술 더 뜬다. 대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핀천은 프로필 사진 한 장 구하기가 힘들다. 유일한 사진이 학창 시절이나 해군 복무 시절 사진이다.

핀천은 신비스럽다. 그의 소설은 난해하면서도 치명적이다. 그의 은밀한 소설을 읽다 보면 심연으로 들어가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보면 스스로 환상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환상을 소중히 간직해요. 달리 당신이 가진 게 없지 않소? 환상의 작은 촉수를 움켜잡아요.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이 당신을 꾀어 그것을 없애 버리거나 약사들이 독약으로 그것을 제거하게 하지 말아요. 환상을 소중히 간직해요. 왜냐하면 그것을 잃어버릴 때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쉬우니까 말이오. 당신은 그 순간부터 아마 존재하지 않게 될 거요."

'그가 품고 있는 환상이 곧 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작가 핀천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노벨위원회 성향을 봤을때 후보 노릇만 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의 작품은 한 시대를 대표하고도 남음이 있다.

핀천은 1937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코넬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2학년 때 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전 과목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보잉에 취직했다가 2년 만에 그만둔다. 이후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다 1963년 첫 장편 '브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을 발칵 놀라게 한다.

서구 문명의 몰락을 포스트모던 기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부박한 주인공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후 허무에 빠진 인류를 묘사한다. 소설은 타락한 예술가 집단이 넘쳐나는 뉴욕, 몰락한 문명의 상징 이집트의 선술집, 중세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몰타 등을 넘나들며 현대 문명의 부조리함을 투시한다. 그의 문장은 신령스럽다. 무슨 묵시록이나 경전을 대면하는 느낌이다.

"내일 아침은 해가 안 나올 거예요. 나는 문을 닫아 걸 거예요. 죽은 세월이 못 들어오게요. 나는 길을 갈 거예요. 땅으로 물로 낡은 세계에서 새 세계로."

핀천의 문학은 암시적이다. 미로에 빠진 느낌을 견뎌내면 뭔가 명확한 것이 다가온다. 밤샘한 다음 맞이하는 새벽 하늘처럼.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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