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홀릭] 핑크뮬리 롤케이크를 아세요

신익수 2022. 10. 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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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여기서 북동쪽으로 약 45㎞를 달려가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입이 쩍 벌어진다. 딸기우유를 풀어놓은 듯한 '분홍'빛 호수. 그 위를 보트 한두 척이 유유자적 떠다닌다.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이 핑크호수가 그 유명한 레이크 레트바(Lake Retba). 현지에서는 락 호즈(Lac Rose)라 불린다. 프랑스어로 분홍색 호수, 장미 호수라는 뜻이다.

SNS에 올릴 독특한 사진 한 장을 찾아 장소 헌팅을 떠나는 여행 고수들 사이에선 당연히 핫플레이스일 터. 30달러를 내면 사막 관광차를 타고 호수 주변을 도는 투어쯤은 기본이다. 핑크호수를 가르며 질주하는 보트 투어, 호수 근처 사막 모래 위를 달리는 ATV 같은 액티비티도 있다. 숙박도 된다. 호수 주변엔 호텔, 레스토랑, 시장, 캠핑지가 섹터별로 구축돼 있다. 캠핑도 하고 인근 시장에서 기념품도 산다.

갑자기 핑크호수 이야기를 꺼낸 건, 대한민국, 가을마다 벌어지는 핑크 논란 때문이다. 가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억새·갈대 명소. 은빛으로 상징되는 이 핫플을 어느새 진분홍 핑크뮬리 군단이 강제 점령하고 나선 탓이다.

핑크뮬리. 미국의 서부나 중부의 따뜻한 지역의 평야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분홍빛으로 여행족을 홀리지만, 엄밀히 따지면 외래종이다. 순식간에 토종 호수를 점령한, 베스 같은 외래어종인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한민국은 핑크에 열광하고 있다. 억세게 버텨온 억새·갈대의 은빛 대신 쨍한 핑크의 이 외래종에 사람들이 홀리면서, 지자체들은 앞다퉈 핑크뮬리밭을 선보이고 있다. 억새·갈대 축제 대신 핑크뮬리 축제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가 하면, 핑크뮬리밭이 식상(?)해지면서 아예 '핑크뮬리 롤케이크'를 내놓은 곳도 있다.

핑크 롤케이크 인증샷으로 난리가 난 곳이 합천과 순창이다. 합천군(합천읍 영창리)의 신소양체육공원에는 오름 형태의 핑크뮬리밭이 있다. 원형으로 돌아가는 사잇길을 만들었는데, 이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이 핑크 롤케이크다. 전통 고추장으로 전국을 평정한 순창도 결국 핑크뮬리 롤케이크 카드를 꺼내들었다. 순담 투어스테이션 공원에 나선 언덕 모양의 꽈배기형 핑크뮬리밭을 만든 것이다.

입과 몸으로는 전통 고추장을 사러 가는데, 눈만은 외래종 핑크를 보며 가을 낭만을 느끼는 장면이, 아, 기자의 눈에는 이율배반적으로 비친다. 물론 글로벌 시대에 쇄국적 의미로, 우리 토종의 억새·갈대를 지키자는 시각은 아니다. 다만, 어어 하는 사이에 외래종이 우리 터를 지켜온 토종들을 밀어내는 사태가 염려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매혹적인 분홍을 앞세운 핑크뮬리의 인기는 이미 세계적이다. 조경용으로 다양한 곳에서 식재되고 있다. 나들이족 유치를 위해 외래종 뮬리에 목을 매고 있는 지자체들의 분위기를 정부는 알고나 있을까. 핑크뮬리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잘 드러난, 두산백과의 한 대목을 소개해드린다.

'2019년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시한 외래생물에 대한 위해성 평가에서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평가돼 있다. 정부 차원에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관찰만큼은 세계 최강인 대한민국 정부다. '억세'게 버텨온 억새·갈대가 위협을 느껴온 지난 4년간, 역시나 관찰'만' 하고 계신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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