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세계지도의 중심

2022. 10.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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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를 중심에 놓고
세계지도 그리기는 만국공통
지도는 곧 사고방식의 반영
거꾸로 된 지도를 보면
사고가 좀 유연해질는지도
벌써 40년쯤 지났을까. 오래 전, 수도회 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을 당시의 일이다. 내가 속한 수도회는 교육사업을 많이 하는 국제 수도회였기에 외국인 신부님들이 자주 방문하곤 했다. 게다가 대학 캠퍼스 안에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수 신부님들의 공동체 거주 공간이 있었기에 국제 교류를 통해 오시는 분이 많았다.

어느 날 유럽에서 오신 손님 신부님 한 분이 세계지도를 구입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청하셨다. 의아한 나머지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 당신이 이제껏 보아온 세계지도와는 전혀 다른 지도를 한국에서 처음 보았다고, 우리 공동체 휴게실 벽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미주대륙이 지도의 오른편에 그려진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하셨다. 대개 선교활동을 하는 수도 공동체에는 세계지도가 휴게실 등 공동 방에 걸려 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활동하는 동료 회원들을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간단하기도 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가 사실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그야말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는 우리와는 다른 모양으로 대륙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연결된 두 덩어리의 미주대륙을 지도 오른쪽 혹은 왼쪽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지도의 중심이 바뀌었다. 서구세계에서 제작한 지도의 중심은 유럽 국가들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우리나라가 지도의 중심이었다. 그 이후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어느 나라에 가든 그곳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를 유심히 찾아보곤 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미주대륙을 가운데 놓고, 유라시아대륙을 반으로 갈라 배치한 지도도 보았다. 호주에서는 호주 대륙을 중심에 놓고 지도 자체를 뒤집어 거꾸로(?) 그린 지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안타깝기도 한 사실 하나는 가끔 우리나라에서 제작하는 지도이긴 한데, 유럽이나 미국의 지도처럼 '서양식' 세계지도를 아무 의식 없이 그냥 베껴와 사용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지도를 보거나 사용하는 방식이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심각하게 깨우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가 보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타인의 관점에서나, 혹은 주변의 관점에서, 심지어는 약자나 주변으로 밀려나 소외된 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가로막는 장애가 아닌지 모르겠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이해하는 것과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이해하는 방식 간의 갈등에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았어야 하는 역사적 상황도 많이 있었지 않았나.

이제는 거의 필수품인 차량 내비게이션 또한 진행 방향에 맞추어 지도를 계속 뒤집으며 안내를 하고 있지 않는가! 가끔 나는 내비게이션 화면 자체를 남북 방향으로 고정해 놓고, 인쇄된 지도를 보는 듯 사용한다. 한반도 자체가 남북으로 그려진 지도를 늘 보아왔기에, 방향이 머리에 들어와 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때 편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나만의 고집일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한 대기업 회장님의 집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뒤집어 놓은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거꾸로 그려진 지도를 보며, 사고하는 방식이나 일 혹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꿀 수도 있고, 새로운 관점에서 주변의 일들을 관찰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독도법에서 배운 것이지만 지도를 사용할 때는 항상 남북 방향을 기준으로 지도를 제대로 배치해야 한다. 어쩌면 내 사고방식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표준 아닌 표준(?)으로 정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지도를 뒤집어 보듯, 내 사고의 고정 관념도 뒤집어, 주변의 관점에서 중심을 이동해 볼 줄 아는 그런 유연성과 창의성을 꺼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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