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관찰] 스토리텔링의 그림자

2022. 10.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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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 이야기를 입히면
나쁜 상품도 불티나게 팔려
감시의 눈은 늘 크게 떠야
인간은 스토리를 사랑한다. 역사 이래로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위험과 금기를 알리며 가르침을 주는 용도로 늘 활용되어 왔다. 이걸 방증이라도 하듯이 인간은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스토리의 형태로 이해하게 되어 있다. 당장 우리가 어떠한 현상을 목격했을 때 가장 먼저 그 원인을 추론하지 않는가?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에서 스토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야가 바로 세일즈와 광고, 마케팅이다. 이들은 상품에 매력적인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매우 특별하게 여기게 만든다. 소비자들 또한 상품이 가진 매력적인 스토리에 반해 많고 많은 상품 중에서도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샤넬 No.5는 샤넬에서 아주 특별한 상품은 아니다. 명품 브랜드에서 가장 핵심적인 상품은 옷과 핸드백이며 향수의 경우 이를 마무리 지을 보조적인 상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평소 샤넬 향수를 즐겨 쓰던 매릴린 먼로가 '밤에 무얼 입고 자나요?'란 질문에 '샤넬 No.5'라고 답한 것으로 전설이 됐다. 매릴린 먼로는 벌거벗고 잔다고 하기에 민망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만 그것이 당대의 섹시 아이콘이었던 매릴린 먼로와 결합돼 강력한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샤넬 No.5는 향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스토리를 갖고 많은 소비자들을 유혹할 수 있었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은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많은 영역에서 이 스토리를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스토리텔링에는 어두운 측면 또한 존재한다. 그 효과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현상을 목격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거기서 인과관계를 유추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스토리가 매력적인가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심 탈레브가 이야기한 내러티브 오류다.

미국에서 게토레이가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포카리스웨트에 밀린 만년 2위인 것도 이런 스토리텔링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게토레이의 성공은 플로리다대학의 미식축구팀인 게이터스가 거둔 승리 덕분이었다. 선수들이 게토레이를 마신 이후로 경기력이 향상되고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게토레이가 경기력을 향상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게토레이의 개발자인 로버트 케이드 박사는 마치 게토레이로 인해 성적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게토레이 탈취사건이란 자작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기망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게이터스의 성적 향상 원인이 게토레이를 마셨기 때문이라고 인과관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미국 스포츠계에서 선수들의 음료로 확산되면서 더 많은 스토리들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미국 시장에서 현재의 위상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개발 비화와 해프닝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게토레이가 소비자에게 유해하거나 나쁜 상품이 아니며 나쁜 결과를 발생시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경우 소비자에게 해가 되고 소비자 후생을 후퇴시키는 상품도 스토리텔링으로 충분히 많이 팔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업가의 도덕성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모든 기업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업가도 사람인 만큼 일정 비율로 도덕적 기준이 낮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익이 결부된 특성상 이러한 유혹에 평범한 시민들보다 더 많이 노출된다. 즉, 스토리텔링의 강력한 힘은 긍정적으로도 작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들과 감독 기관이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상품과 서비스들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토리텔링만으로 소비자의 후생을 저하하는 상품이 팔려나가는 것은 결국 시장의 후퇴를 부르기 마련이다. 현명한 소비자들은 이런 위험성에 주목해야 한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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