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면] 얼굴 보약

2022. 10.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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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옆으로 눌려 희한하다"
소개팅女 "노래미 닮았다"
살면서 들은 충격적 얼평들
몇 년 전부터 반전의 조짐
나이보다 젊게 보기 시작
내삶이 만든 낯의 무늬가
기분 좋은 인상을 만든듯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다정히 웃어주는 것
얼굴엔 그만한 보약 없다
충격적인 일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외모에 관련해 들었던 몇몇 말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코가 큰 친구가 내 얼굴을 가리켜 앞에서 한번 눌리고 옆으로 한번 눌린 희한한 얼굴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충격으로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유난히 낮은 코 때문에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심하던 시기였다.

내 코가 길게 뻗은 낮은 구릉 같다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교실 뒤에 붙은 거울을 보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빨래집게로 코를 집어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코를 올려 옆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어서 자라서 성형수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나의 외모 콤플렉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얼굴이 긴 편은 아니지만 좁다. 웃으면 주걱턱이 된다. 언젠가 내 웃는 옆얼굴이 찍힌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한껏 웃으니 얼굴이 펴지면서 낮은 코는 아예 얼굴 속으로 파묻히고 턱은 공중을 향해 뻗어 나와 전체적으로 바이킹 배와 같은 모양이 됐다. 아, 정말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였다. 그 뒤부터 나는 옆얼굴이 사진 찍히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됐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학생과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이 친구가 내 얼굴이 노래미를 닮았다고 했다. 갯바위 밑에 사는, 낚싯바늘만 내리면 잡혀 올라오는 못생긴 물고기다. 우스개처럼 듣고 넘겼지만 그날 그 아이가 보여준 전반적인 매너로 보건대 분명 비하 발언인 것 같았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할수록 의기소침해졌다. 어딜 봐서 내가 노래미인가. 거무튀튀하고 눈도 툭 튀어나온 못생긴 물고기가 나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각도의 법칙과 은폐의 기술이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잘생겨 보이는 45도 각도로 항상 거울을 봤고, 긴 턱을 가리기 위해 정수리 쪽 머리를 위로 봉긋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양쪽 비율이 맞아 턱이 덜 길어 보였다. 자주 머리를 감은 뒤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치기 때문에 물을 묻혀서 다듬기가 훨씬 더 쉬웠다. 머릿결이 약한 직모라 드라이로 다듬기엔 내 기술력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30대로 접어들자 외모의 공격은 들어 보인다로 바뀌었다. 초면인 사람들은 대개 내 나이보다 네댓 살은 더 보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고 공손히 대했다가 나중에 자기보다 여덟 살이나 적다는 사실을 알고 억울해하는 이도 있었다. 이것이 어찌 그가 억울할 일인가, 내가 억울할 일이지. 면전에서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다른 출판사 대표보다 내가 선배인 줄 알았다고 얘기한 기자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변화는 1~2년 전부터 찾아왔다. 어느 순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내 나이보다 덜 보기 시작했다. 아마 비교적 젊게 입고 다니는 패션 때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더니 대부분의 사람이 내 얼굴을 실제 나이보다 젊게 인식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소소한 기쁨이 쌓여갔다.

최근엔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얼굴만 봐도 사람을 알겠다는 그런 얘기였다. 내 삶이 만들어낸 내 얼굴의 무늬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인상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소소한 기쁨이 더욱 쌓여간다.

얼굴이란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은 듯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서양 배우들의 잘 만들어진 주름살을 보고 감탄하곤 한다. 젊은 나이임에도 이마에 주름이 가득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건 얼굴이 어찌 변하든 간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감정 표현에 충실한 그들의 문화 탓이리라.

반면 고생 끝에 만들어진 주름살은 우리의 얼굴을 그 고랑 사이에 묻어버린다. 표정이 감춰진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우리 사회 노년의 얼굴 표상은 그러한 것이 아닐까.

내 얼굴에도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다. 골몰할 때 인상을 쓰는 버릇 때문이다. 한동안 수면무호흡증 때문에 그것이 더욱 깊어졌는데 요즘은 늘 웃고 다니니 많이 옅어졌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다정히 웃어주는 것. 얼굴에는 그만한 보약도 없는 것 같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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