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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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신인 문학상 심사를 했다.
당선작이 정해지자 문학상 주최 측 담당자가 그 작품의 투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도 담당자는 곧바로 당선 통보 전화를 걸지 않았다.
술 취해 자다가, 여행 가려고 기차표를 끊다가, 빙판길에 넘어져 끙끙거리다가, 아르바이트에 늦어 애태우다가, 전화를 받은 후 그들은 술이 깼고, 기차표는 끊지 않았고, 빙판길에서 벌떡 일어났고, 아르바이트에 늦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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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문제가 없었다. 당선이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도 담당자는 곧바로 당선 통보 전화를 걸지 않았다. 심사위원들도 급할 것 없다는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십오 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투고자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종교가 없다 해도 이런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마침내 담당자가 휴대폰을 들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스피커 너머가 잠잠했다. 안 들립니까? 여보세요? 그제야 멀리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잘 들려요. 아까와 달리 몹시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 제가 지금…… 어떻게, 그게…… 아, 정말 감사합니다. 당선자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얼마나 예쁜가. 이 얼마나 인생에 다시없을 특별한 순간인가. 선배며 동료 작가들에게 들은 그들의 당선 통보 순간들이 떠올랐다. 술 취해 자다가, 여행 가려고 기차표를 끊다가, 빙판길에 넘어져 끙끙거리다가, 아르바이트에 늦어 애태우다가, 전화를 받은 후 그들은 술이 깼고, 기차표는 끊지 않았고, 빙판길에서 벌떡 일어났고, 아르바이트에 늦어도 좋았다. 꿈이 이루어졌으니까.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고 누군가 알아주고 격려해주었으니까.
당시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하나같이 오래전 일인데도 아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열에 들뜬 얼굴이 되어, 아니 정말 그때로 되돌아가 방금 등단한 신인 작가가 되어 있었다. 당선 통보 전화란 그런 것이었다. 멀리 갈 것 없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아아. 뒤늦게 생각난 것이 안타까워 탄식부터 했다. 통화 녹음 안 하셨지요? 담당자가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녹음해서 당선자께 선물하면, 그분이 혹 언젠가 소설이 잘 안 쓰이거나 작가로서의 삶에 회의가 들 때 듣고 기운 내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오, 좋은 아이디어네요. 내년부터는 녹음하겠습니다! 그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좋아서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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