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마을 공동체에서 벌어지는..코믹하면서도 서글픈 '이케이도 준'식 전원일기[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하야부사 소방단>
이케이도 준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글을 잘 쓴다. 일본 작가 중에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고 숨도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은 다작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렇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쌍벽을 이루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케이도 준이다. <한자와 나오키>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1963년생으로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일본의 경기가 매우 좋았던 시절에 은행에 취업했으며, 1995년 은행을 퇴사하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끝없은 바닥>으로 에도가와 란포 상을, <변두리 로켓>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경험을 살려 쓴 소설로 ‘금융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다.
은행이나 회사에서 성공을 좇는 남자들의 치열한 경쟁, 샐러리맨이 깨부술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상하 관계를 그려온 이케이도 준의 최신작은 <하야부사 소방단>이다. 화려한 금융업계가 아니라 탁 트인 시골 마을이 소설의 무대다. 주인공 타로는 추리소설 작가다. 첫 소설이 히트를 쳤지만 나날이 판매 부수가 떨어지는 가운데 매일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쓴다. 글쓰기의 답답함에 찾아간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 하야부사 마을에 홀딱 반한 타로는 이주를 결심한다. “도쿄에서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본 적은 없다. 별들은 하늘 위에 수놓아진 채 마치 숨이라도 쉬듯 반짝인다.”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일상을 타로는 바랐을 것이다.
동네 자치회장이 찾아오면서 조용한 일상이 시끌벅적 흥미진진한 추리의 날들로 변한다. 타로는 ‘하야부사 소방단’ 단원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소방단이요?” 하야부사에도 소방서가 있긴 하지만 30㎞나 떨어져 있어서 지역 청년들이 소방차 4대를 보유한 소방단을 꾸려 활동 중이라고 한다. 화재도 진압하지만 축제를 할 때는 경비를 서고, 산에서 실종된 사람이 생기면 찾으러 다니고 산사태가 났을 때 현장으로 뛰어가는 것도 소방단의 일이라고 한다. 타로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하야부사 소방단에 입단한다. 타로가 소방단 입단식을 하던 날, 한 집에 화재가 나고 타로와 소방단원들은 곧장 그 집으로 뛰어가 화재를 진압한다. 타로는 하야부사 마을에 연쇄방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방화인가, 살해인가?
타로의 고요한 시골 생활과 집필활동은 어느새 탐정 놀이가 되고, 1990년대 활동했던 한 신흥 종교가 이 지역에서 땅을 보러 다녔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이케이도 준다운 섬세한 미스터리가 막을 연다.
일본 시골의 현실도 한국과 비슷하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인프라가 부족하며, 지방 마을을 찾아 새 터전을 마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시골 마을의 현실과 그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고 새터를 마련하려는 신흥 종교단체, 어떻게든 마을을 지켜내려는 젊은이들,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가. 목가적이면 코믹하고 지방 도시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으면서도 서글픈 소설이다.
김민정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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