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기업 부담 감수 '고육책'..삼성전자, 하반기 전기요금 1600억 늘어
에너지 수입액 상승에 한전은 연말 사채 발행액 한계 ‘채무불이행’ 위기
평균 단가 이하로 쓰던 산업용 차등 인상…대기업들 절약 집중적 유도
정부 “kWh당 30원 올리면 무역적자 25억달러 감소”…경제계 일제 반발
정부가 4분기 전기요금을 기존 예고분보다 더 인상하기로 했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기업이 쓰는 요금제는 주택용보다 두 배 넘게 올렸다. 여전히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데다 기업 부담마저 늘어날 수 있지만 요금을 올려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올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 중인 한국전력이 채무불이행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전기요금 인상을 서두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30일 한전에 따르면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가격이 폭등하면서 발전사에 내는 전력 도매가격은 9월 기준 kWh(킬로와트시)당 255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평균 판매단가는 이에 미치지 못해 전력을 판매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한전 영업적자는 14조3000억원에 달했다. 한전은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사채를 발행하고 있지만 올해 말이면 사채 발행액이 한도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이 더는 사채를 발행하지 못하면 만기가 돌아오는 사채를 상환할 수 없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정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수요가 줄지 않으면서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비수기인 여름철임에도 지난달 원유·가스·석탄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은 185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96억6000만달러) 대비 88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이는 8월 무역수지 적자(94억7000만달러)와 맞먹는 수준이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여전히 높은 에너지 가격 추이를 감안하면 4분기에도 에너지 수입 증가는 무역수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전기요금을 kWh당 30원 올리면 에너지 수입액이 감소해 3개월간 무역수지 적자가 약 25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요금을 올려 수요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기업의 전기 절약을 집중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수요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 보고 주택용 인상분(kWh당 7.4원)보다 9.2원이나 더 올렸다.
실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산업용 전력 사용량 상위 기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가 사용한 전력량(9772GWh)은 같은 기간 1500만가구가 사용한 전력량(3만8436GWh)의 4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특히 산업용은 전력 판매단가가 주택용이나 일반용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인상할 여지도 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가 사용한 전력 단가는 kWh당 97.71원으로 평균 판매단가(kWh당 110.41원)를 크게 밑돌았다. SK하이닉스(97.15원), 현대제철(98.06원), 삼성디스플레이(98.22원), LG디스플레이(97.76원) 등 전력 사용량 상위 5개 기업의 단가는 모두 평균 판매단가보다 낮았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삼성전자가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같은 전력량을 사용한다면 요금은 약 16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 인상 방침에 경제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주요 선진국도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국 산업 경쟁력 보호를 위해 산업계에 대한 보조금 지급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근본 해법은 산업계는 물론 일반 가정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의 에너지 사용 효율화를 위해 시장 원리와 원가에 기반한 가격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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