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엔 서브프라임, 지금은 LDI?..채권시장 주목하라[오미주]
[편집자주] '오미주'는 '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의 줄인 말입니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이벤트가 있었거나 애널리스트들의 언급이 많았던 주식을 뉴욕 증시 개장 전에 소개합니다.
모든 위기는 버블 붕괴에서 발생한다.
2000~02년 나스닥지수 폭락은 닷컴 버블이 문제였고 2007~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택가격 버블이 문제였다.
위기 뒤에는 버블을 극대화시킨 금융상품도 존재한다.
닷컴 버블 땐 수익모델이 입증되지도 않은 닷컴기업을 무분별하게 상장시킨 기업공개(IPO) 제도가 있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땐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이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모아 만든 금융상품이다.
지금 자산시장이 버블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논외로 하자.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부동산, 주식, 채권, 가상화폐 등 대부분의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 가격은 이미 큰 폭의 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28일 영란은행이 긴급하게 국채 매입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인 부채연계투자(LDI :Liability-driven investment) 전략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같은 폭탄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연금펀드가 매월 지급해야 할 연금 부채에 초점을 맞춰 현재 자산을 운용하는 전략이 LDI이다.
이 때문에 LDI는 투자 수익에 관계없이 약속한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DB(확정급여)형 연금에 주로 채택된다.
연금펀드가 약속한 연금을 지급하는데 가장 큰 변수가 되는 것이 금리이다. 금리가 변하면 약속한 연금만큼 수익을 올리는데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에서 3%로 떨어지면 30년 동안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이 1%포인트만큼 줄게 된다.
이 때문에 LDI는 미래에 약속한 연금 지급액을 맞추기 어렵게 만드는 금리 하락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헤지하기 위해 금리 스왑과 같은 다양한 파생상품에 투자한다.
연금펀드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지급해야 할 연금부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레버리지도 광범위하게 이용한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컨설팅회사인 하이먼 로버트슨의 파트너인 존 해체트는 "연금 자산에서 30파운드나 40파운드를 사용하면 100파운드의 금리 익스포저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레버리지는 연금펀드의 부족분을 당장 메우지 않아도 문제가 없도록 해주지만 채권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부메랑이 된다. 레버리지 거래에는 국채수익률 변화를 헤지하기 위한 증거금이 필요한데 국채 가격이 급변동하면 헤지 비용이 늘어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결과 영국의 연금펀드들이 현금을 마련하려고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팔면서 패닉성 매도가 발생했다.이 매도로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또 다시 증거금 증액 요구를 받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를 내버려 두면 영국 국채 금리가 폭등하는 것은 물론 연금펀드 파산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영란은행은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한 금융인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영국 국채시장의 패닉을 불러 일으킨 방아쇠는 정부의 감세안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LDI 전략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때 본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이전까지 한번도 금리 인상기를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준(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에 따른 국채 금리 상승이 LDI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에는 1조8000억달러 이상의 기업 연금 플랜이 채권 가격 하락으로 마진콜에 직면해 있다.
연금 컨설팅회사 겸 보험 브로커리지인 윌리스 타워스 왓슨은 자사가 위탁 운용하는 미국의 기업 연금 플랜이 올들어 채권 가격 급락으로 담보물을 수천만달러 늘린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기업 연금 플랜은 2006년에 연방 퇴직 관련 법률이 기업의 연금 부채를 장기 회사채 금리로 산정하기 시작하면서 LDI 전략을 확대해왔다.
다만 푸르덴셜 파이낸셜의 PGIM에서 LDI 전략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톰 맥카튼은 미국에서 LDI 전략이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규모는 영국에 비해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LDI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영국이 진앙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 채권시장도 불안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WSJ는 지난주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채권시장이 상대적으로 조용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연준의 0.75%포인트 금리 인상도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국채수익률이 오르긴 했지만 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을 반영하며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지난주 후반부터 국채수익률이 급등하며 채권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WSJ는 이를 연준보다 해외 시장의 문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국가들이 연준을 따라 금리를 잇따라 인상하고 일본은행(BOJ)은 달러를 팔아 엔을 사면서 미국 국채 투자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이어 영국의 감세안으로 불거진 국채시장 불안이 미국으로 번졌다.
지난 21일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전에 3.5% 수준이었던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29일 현재 3.747%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뉴버거 버먼의 토마스 바다스 글로벌 투자등급 채권 공동 팀장은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의 절하를 막기 위해 연준처럼, 혹은 연준보다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전세계 채권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 "글로벌 채권시장의 변동성은 연준이 기본적으로 금리 인상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출 때까지 증시도 안정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지난 여름 랠리만 해도 연준이 내년 6월부터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모멘텀이었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증시에 부담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기술주에도 악재가 쌓이고 있다.
애플은 지난 28일 아이폰14 증산 계획을 철회했다는 블룸버그 보도에 타격을 입은데 이어 29일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수요 부진을 이유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추면서 주가가 142달러대로 추락했다.
29일엔 세스퀘한나의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롤랜드도 PC 수요 약세가 소비자에서 기업으로 번지고 있다며 엔비디아와 AMD의 목표주가를 대폭 하향 조정해 반도체주를 급락시켰다.
29일 장 마감 후엔 D램 회사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유례없이 심각한 하강 사이클을 겪고 있다며 2023년 회계연도 설비투자를 30% 줄인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업들의 실적 발표 기간에 추가적인 악재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지금은 주가가 아무리 하락했어도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지켜보며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큰 위기는 증시가 아니라 채권시장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증시보다 채권시장에 더욱 주목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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