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노동' 사라진 교육
“교육은 누구의 손아귀에 쥐여졌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결정되는 무기”라고 우민화 정책을 폈던 구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말했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의식이 들기까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그들은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내 것인지 모르는 권리는 주장할 수 없다. 민주주의로부터 먼 사회일수록 지배엘리트의 핵심이익과 결부된 부분은 교육에서 숨겨지고 삭제된다.
교육과정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2024학년도부터 일선 학교에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삭제되더니 각 교과목 단원별 성취기준에서도 ‘노동’이라는 단어가 증발하다시피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권의 역사, 노동과 임금은 실종된 반면 사회적 책임과 직업윤리는 비중있게 언급됐다. 미래에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가르치려던 이전 정부 계획을 윤석열 정부가 뒤집었다. 노동교육이 ‘반기업·반시장경제 정서’를 부추긴다며 눈엣가시로 여기던 재계의 승리다. 교육 공백 속에 아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노동 혐오’를 흡수하고 ‘노동자’가 되길 부끄러워한다고 학교 현장에선 우려한다. 아르바이트 청소년 2명 중 1명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해 노동인권을 침해당한다.
육체노동을 정신노동보다 낮게 보는 사회 분위기는 실업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생산직 구인난 등 ‘일자리 불일치’를 초래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은 대기업 사무직과 전문직 양성에만 열을 올린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옛말이 무색하다. 독일 초등학교에서 노사교섭 체험학습을 실시하고, 덴마크에서 노동을 존엄한 삶의 방편으로 가르치는 것은 건강한 노동 인식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바탕이어서다. 한국도 공동체와 사회 통합의 장기적 관점에서 공교육 내 노동인권교육을 유럽 국가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노동조합 때려잡아 침묵시키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를 독려한 극우 성향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긴 걸 보면 지나친 기대인 것 같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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