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구 유해 집단 암매장, '아동용 삼청교육대' 선감학원을 아십니까

이은지 입력 2022. 9. 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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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2년 9월 30일 (금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김진희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팀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이어서 <이슈인터뷰>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은 선감학원을 아십니까? 아동판 삼청교육대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아동 인권침해 사건이 무려 40년이나 자행됐다고 하는데요, 피해생존자 다수가 암매장지로 지목한 곳에서 발굴이 시작된 지 하루 만에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진희 선감학원 조사팀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김진희 진실화해위 선감학원팀장(이하 김진희):

◇ 이현웅: 어제오늘 뉴스를 통해서 발굴 소식을 들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언제까지 발굴 작업을 하게 됩니까?

◆ 김진희: 이번 주 월요일, 26일부터 시작을 했고요. 오늘이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 이현웅: 시굴 조사이기 때문에 짧은 겁니까?

◆ 김진희: 네, 그렇습니다.

◇ 이현웅: 유해 발굴이 됐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 김진희: 저희 위원회에서 진행한 곳은 안산 단원구 선감동 산 37-1 일대에서 진술인들이 직접 묻었다고 하는 곳 중 유력한 다섯 곳을 저희가 시굴을 했었고요. 그 시굴한 다섯 곳 모두에서 시신들로 추정되는 유해와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 이현웅: 치아, 단추 등이 발견됐다고 하던데요?

◆ 김진희: 네, 맞습니다. 연구원님들 말씀을 들으면요. 선감도 땅 자체가 산성도가 높아서 뼈가 융해돼서 현재까지 뼈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적고, 뼈 중에서 치아가 가장 오래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들을 주셨는데요. 말씀 그대로 치아가 주로 나왔었고요. 저희가 조금 더 세밀하게 확인해 봐야 되는 상황인데, 현재로써는 진술을 하신 바와 같이 당시 입었었던 원복 중 동복과 하복의 단추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현웅: 치아나 단추 같은 유해가 발견되면 시굴이 아닌 정식 유해 발굴까지도 이어지는 겁니까?

◆ 김진희: 실질적으로 저희가 이번 시굴에서 나온 유해와 유품을 통해서 선감학원 원생이었던 신청인들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고요. 유해와 유품에 대한 세부적인 감식 결과와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결과들은 아직 정확하게 나온 바가 없기 때문에 감식 후에 이것들이 결과 보고 및 가늠이 될 거고요. 이후에 유해 발굴 관련해서는 저희가 관계당국에 유해 발굴 및 추모 시설 관련해서 권고안을 낼 생각입니다.

◇ 이현웅: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번 발굴이 시작된 겁니까?

◆ 김진희: 예, 맞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진술뿐만 아니라 이미 1996년과 2006년에 언론 매체를 통해서 유해 발굴이 두 차례가 된 적이 있고요. 2018년 경기도 발굴에서도 저희가 하고 있는 해당 지역에 150구로 추정되는 유해가 있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들도 함께 반영이 돼서 이번 시굴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이현웅: 피해자들의 진술을 보니까 서로 묻어주기도 했다고 하던데, 상당히 끔찍한 일인 것 같습니다.

◆ 김진희: 그렇습니다. 진술에 의하면 주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경우 원생들이 직접 사망자들을 데려가 땅을 파고 묻는 행위를 했다고 하고요. 이 과정에서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진술이 다수입니다.

◇ 이현웅: 선감학원에 대해서 낯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선감학원에 대해서 청취자 여러분들께 설명하고 시작하겠습니다.

◆ 김진희: 선감학원은 1942년부터 해방 이전까지 일제 시기 감화원으로 운영됐었고요. 이후 1946년부터 1982년까지 경기도도립으로 운영됐었던 부당한 수용시설입니다.

◇ 이현웅: 일제가 만든 거잖아요. 그런데 해방 후에도 계속 운영이 비슷한 방식으로 됐던 건가요?

◆ 김진희: 네,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됐고요. 수용 대상에 부랑아를 대상으로 단속 후 수용이 이루어졌는데요. 지금 출하 과정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들은 부랑아들이라 불명확하다는 것과 그 당시 일제 강점기 이후 부랑아 단속 근거 분명이 해방 이후에 1961년도에 제정된 '아동복리법'에 의해서 아동들이 단속됐는데요. 아동복리법도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 이현웅: 피해자 분들 만나보셨을 텐데, 실제 부랑아가 아닌 분들도 많으셨죠?

◆ 김진희: 그렇죠. 앵커님께 부랑아가 누구냐고 제가 되묻는다면 뭐라고 대답 주시겠어요?

◇ 이현웅: 연고지가 없거나 신분이 명확하지 않다, 정도로 답하지 않을까요?

◆ 김진희: 예, 그렇다고 하면 보통 부랑아라는 개념 자체가, 18세 미만으로 말씀하신 대로 연고지가 없거나 혹은 옷이 불량하다든가 아니면 학교 갈 시간인데 학교 가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는 아동들을 주로 부랑아라고 잡혔는데요. 저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랑아라고 하면 불량하다, 나쁘다, 범죄와 연관이 지어지잖아요. 치안적인 측면이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아동들은 치안 대상이 아닌데 치안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조사 결과 나왔습니다.

◇ 이현웅: 학원이 폐쇄된 1982년까지 얼마나 많은 아동들이 이곳에 있었습니까?

◆ 김진희: 저희가 제출받은 원아대장 상으로는 4,961명인데요. 저희가 조사를 해 보니까 원아대장에도 어느 정도 오류가 있어서 더 많은 수가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 이현웅: 소년들만 입소를 했던 곳입니까?

◆ 김진희: 예, 맞습니다. 남자 아동들만 입소를 했던 곳입니다.

◇ 이현웅: 어떻게 운영됐나요?

◆ 김진희: 경기도에서 직접 운영을 하고 있었고요. 원장은 경기도에서 파견된 사무관이었고 일하는 행정주가 대부분 경기도 공무원들이었습니다.

◇ 이현웅: 그러면 이곳에서 강제 노역 등에 시달렸던 겁니까?

◆ 김진희: 우선 전원은 아니고요, 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 수용된 감금상태로 그곳에서 수용생활을 하면서 강제노역, 혹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훈육, 그리고 대부분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고요. 탈주 과정에서도 사망이나 감금, 그리고 가족을 못 만나는 강제 실종 등의 피해들이 있었습니다.

◇ 이현웅: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 김진희: 한 분 한 분 모두가 다 무척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었고요. 그중에서 가장 제 마음을 울렸던 것들이, 그분들이 어린 시절을 잃었다는 말씀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수용소에 있다 보니까 가장 이분들이 하루 종일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이 '내가 어떻게 하면 여기서 생존하지?' 여기에만 몰두하고 계셔서 바로 옆에 있는 같은 피해자들끼리도 유대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지금 사회생활을 하시는 중에, 어린 시절 친구들이 가장 소중한 내 자산이잖아요. 그런 어린 시절이 모두 날아가고 없다, 라는 말이 제 가슴이 많이 와 닿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50년 전, 60년 전일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기억들로 인해서 고통 받고 지속되는 악몽, 불면을 겪는 분들이 많아서 그 부분도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

◇ 이현웅: 이전 자료들을 보니까, 잠 잘 때도 도망가지 못하게 옷을 벗겨서 재우거나 힘이 센 아동을 대상으로 반장 같은 역할을 정해서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자료가 조사된 게 있습니까?

◆ 김진희: 당시에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저희가 주로 진술조사로 이 문제를 결정하고 있는데요. 진술들에 의하면 군대식이었다. 아동들을 대상으로 군대식 규율을 지키게 했다는 내용들이 있고요.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들은 아무래도 인력구조를 보면, 상당수의 수용시설이 당시 대거 수용 인원들이 있던 것에 비해서 직원들 수가 무척 적었더라고요.

◇ 이현웅: 지금은 선감도가 다 도로가 연결돼 있잖아요? 그 당시에 탈출하려고 하면 바다를 건너야 됐던 겁니까?

◆ 김진희: 탈출 경로가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한 곳은 배를 이용해서 가야 되고요. 한 곳은 배를 이용하지 않으려고 하면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뻘을 넘어서 육지로 가는 두 가지 경로입니다.

◇ 이현웅: 그러다가 위험한 일도 닥치는 경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 김진희: 그렇죠. 이미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아시겠지만, 뻘로 나가다 보면 뻘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고요. 뻘은 무사히 지나가다가도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서 물이 들이닥치게 되면서 익사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 이현웅: 오늘이 시굴 마지막 날이라고 했는데, 이후에 진상조사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 김진희: 우선 이번 시굴의 목표는, 진술 형태에 대한 사실 입증이었는데요. 이 사실 입증은 어느 정도 밝혀졌기 때문에 수사의 진행은 더 이상 없을 거고요. 다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분들이 비정상적으로 암매장되어있는 상태잖아요. 그리고 다섯 곳에서 모두 희생자로 추정되는 분들이 나왔기 때문에 이분들이 감식 결과 희생자가 맞다고 한다면 국가에서 유해를 거두고 이분들의 암울했던 일생과 죽음까지 비정상적이었고 죽음 이후에도 암매장되어 있는 상태잖아요. 그렇다면 국가에서는 이분들의 유해를 거둬들이고 추모 시설을 건립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희가 권고안을 쓸 예정입니다.

◇ 이현웅: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김진희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팀장과 함께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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