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약탈적인 킹달러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달러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물가 관리 실패로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불똥을 맞았다. 달러 표시 외채를 가진 개도국을 예로 들면, 국제금융기구에서 10조원을 빌렸는데 달러 강세와 자국 통화 약세로 인해 갚아야 할 돈이 졸지에 2조원 늘어나게 된다. 채무보다 채권이 많으면 문제없지만, 개도국들은 대부분 빚이 더 많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려야 하는 수십 개 국가의 국민들은 이자를 내느라 허리가 휜다. 이젠 고물가가 문제인지 킹달러가 문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고물가는 허리띠를 졸라매면 된다지만, 통화가치 급락은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켜 경제를 파탄 낼 수 있다. 개도국에선 개인과 기업의 파산이 늘고 경제가 불황에 빠지게 된다.
이번 달러 강세 국면은 미국이 촉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지금까지 무려 5조달러(약 7200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었다. 인플레이션 경고음이 쏟아졌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일시적"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더니 허둥지둥 0.75%포인트씩 금리를 올려 달러를 치솟게 했다. 달러값이 오를수록 미국은 수입 물가가 떨어져 고물가를 진정시킬 수 있다. 미국 경제를 위해 다른 나라를 희생하는 구조다.
전 세계가 아우성인데 정작 미국 연준은 다른 나라의 고통을 못 본 체한다. 세계 경제 충격을 우려하는 의례적인 발언조차 안 나온다. 기축통화의 책임과 신뢰를 기대하는 게 순진한 걸까.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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