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슬픔 속에 흐르는 잔잔한 위로의 노래
시집 제목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22쪽에 실린 신작 시 '택배'에 담긴 문장이다. 어느 날 '나'에게 택배가 도착한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은 박스. 그 안에 '슬픔'이 담겨 있지만 포장지를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이 시는 정호승의 1978년 대표작 '슬픔이 기쁨에게'에 대한 답시로 읽히는 매력이 있다. 그는 오래전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에게 도착한 슬픔은, 바로 젊은 '나'가 보낸 그 슬픔 같다. 인간은 슬픔을 순환하는 존재임을,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 얼굴은 바로 시인 그 자신임을 정호승은 직시한다.
슬픔을 이야기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기쁨을 이야기하지만 환희하지 않는 정호승의 단호함이 만져진다. 98쪽에 담긴 시 '헌신짝'에서 그는 버려짐을 오히려 다가올 희망으로 전환한다. '버려진 기쁨'이란 표현이 특히 그렇다. '나에게는 버려진 기쁨만 있을 뿐이다. 나는 오직 버려진 기쁨에 의해 버려져도 버려진 게 아니다/ 당신은 나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이별이 완성된 줄 알지만/ 나의 이별은 만남을 위한 기다림일 뿐이다.' 당신이 헌신짝이 되어 다시 만날 때, 헌신짝이었던 '나'는 이제 헌신짝이 아니게 된다.
136쪽 시 '도끼에게'는 장작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힌다. '망설임 없이 힘껏 나를 패다오'로 시작되는 시는 '쪼개진다는 것은 나눈다는 것이다'란 중반부 문장에 이르러 드디어 시의 몸을 이룬다. '빈집이 되기 위하여 집을 떠난다'(시 '집을 떠나며'), '용서받지 못한 더러운 마음으로/ 아직 마침기도를 할 때가 아니다'(시 '마침기도')란 글귀도 비밀스럽게 열어볼 만하다.
정호승 시인은 후기에서 "썩어가는 모과 향은 모과의 영혼의 향기다. 내 육신은 늙어가도 내 영혼만은 시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해본다"고 적었다. 등단 50주년과 관련해서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디에서 삶의 가치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까"라고 덧붙였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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