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아냐?" 15년간 숨겼던 화석 공개되자 난리난 이유[BOOKS]

김슬기 2022. 9. 30. 17: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화석맨 / 커밋 패티슨 지음 / 윤신영 옮김 / 김영사 펴냄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죽어서 이름만 남기지 않는다. 화석도 남긴다. 2012년 저자는 세계에서 성공한 화석 사냥꾼 중 한 명을 만나 그가 발견한 440만년 전 화석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일명 '아르디'를 알게 됐다. 알면 알수록 이 화석은 진화론의 주류와 너무 많이 충돌했다. 새로운 종(種), 새로운 속(屬)에 속했으며 나무에서 생활한 수상 유인원의 특징과 지상에서 두 발로 걷는 이족보행 유인원의 특징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이 화석은 2009년 공개된 직후 '환영받지 못한 자', 심지어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가 됐다.

깡마른 화석 사냥꾼인 팀 화이트 버클리대 인류학과 교수는 유명 인사였다. 36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직립보행을 했음을 증명한 라에톨리 발자국 화석을 발굴했고, 320만년 전 뇌 크기는 현생 인류의 3분의 1에 불과했지만 직립보행을 하고 유인원스러운 입을 지녀 '인류의 조상'이란 별명을 얻은, 가장 유명한 화석 '루시'의 복원팀에도 참여했다.

아르디 화석
화이트는 두 발로 걷고 여타 동물과 다른 진화 여정을 시작한 루시 이전 '암흑시대'의 존재를 찾고 싶었다. 당시까지 약 400만년 전의 화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4년 화이트 연구팀은 수차례 도전 끝에 총알이 날아다니는 에티오피아 아파르족 마을 근처에서 루시보다 100만년 이상 앞선 아르디를 발견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1면에 '새 화석을 통해 과학이 인류 여명에 접근하다'라고 보도했다. 화이트는 "해부학적 특징이 침팬지와 비슷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곧 그는 이 말을 후회하게 된다.

실제로 타협을 모르는 완벽주의자 화이트의 고집으로 15년 만에야 이 화석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화이트는 과거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해야 했다. 이것은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 성과' 1위로 뽑힐 만큼 큰 사건이었다.

뉴욕타임스, 패스트컴퍼니 등에 글을 쓰는 작가 커밋 패티슨은 인류 화석 아르디에 완전히 빠져들어 10년에 걸쳐 이 책을 저술했다.

고대 그리스 해부학부터 현대 유전학까지 수백 편의 논문, 기사, 저술 등을 읽고 인류의 진화에 관한 흡인력 있는 논픽션을 완성했다. 제목 '화석맨(Fossil Man)'은 오래된 뼈를 트럭 가득 수집하고, 동료들이 구닥다리라고 경멸하는 고독한 과학 분야의 연구자를 뜻하는 말이다. 화석맨들과 함께 저자는 현장 조사까지 떠났다. 길을 잃으면 지역민에게 죽거나 갈증으로 죽게 될 거라는 경고까지 들으면서.

고인류학의 발굴은 영화와는 다르다. 160여 개 뼛조각으로 이뤄진 이 화석 발굴에는 3년이 걸렸다. 복원하고 이해하는 데는 15년이 걸렸다. 전 세계 학자 50여 명이 멸종한 동물 화석 수천 개를 연구하고 고대 환경을 재현해 지질학 연대를 구성했다. 과거의 지식이 쓰레기통에 던져지면서 학계는 분열했다. 혁명은 불화를 촉발시켰다.

아르디는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어떻게 우리가 직립보행을 시작했고 정요한 손을 진화시켰는지, 우리가 현생 침팬지를 닮은 조상의 후손인지에 관해 반세기 동안 정설로 여겨지던 패러다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분자유전학 혁명으로 인류와 침팬지의 유전부호가 98.4% 동일하다는 게 밝혀진 뒤 인류학자들은 침팬지의 성교 행위를 연구했고, 인류 폭력의 기원도 침팬지의 싸움에서 찾고자 했다. 하지만 아르디 등장으로 이런 생각은 모두 틀린 것이 되고 말았다. 아르디는 키가 1.2m에 뇌 크기는 자몽만 했다. 손목은 침팬지와 달리 유연했고 쥐는 동작에 적합하도록 엄지손가락이 강했다. 침팬지보다 덜 튀어나온 입, 짧은 머리뼈바닥도 유인원과 달랐다. 초기 현생 인류는 놀랍도록 침팬지와 다른 모습이었다.

수도사를 방불케 하는 집념의 연구자였던 화이트는 아르디 연구 발표로 많은 적을 만들고 만다. 숱한 비난에도 화이트의 무기는 결국 발굴된 뼛조각이었다. "뼈는 로제타석과 비슷하다. 온전한 전체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한 단서를 포함하고 있다. 신체 구조, 사지 길이 비율, 뇌와 몸 크기의 비율, 보행 스타일, 심지어 행태와 환경 적응력까지 알 수 있다."

화이트의 에티오피아 발굴을 가능케 했으며 현지인으로 최고의 고인류학자가 된 베르하네 아스포, '루시'의 발견자로 훗날 앙숙이 된 도널드 조핸슨, 고인류학계의 명문가 리키 가문 등의 이야기도 '인디아나 존스'를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인류의 조상을 둘러싼 학계 논쟁들은 과학이 시끄러운 도전과 싸움의 연속임을 알게 해준다. 그럼에도 저자는 수십 년간 화석 연구에 매달리며 땅속에서 인류의 타임캡슐을 발견한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러한 끈기와 도전은 여전히 인류만의 것임을 옹호하면서. "지금은 잊혀 먼지 나는 도서관 책더미 안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대의 해부학 대가들이, 때때로 현재 인류 진화 분야의 이목을 끌고 있는 첨단기술보다 더 나은 통찰력을 보여줬다. 화석은 분자생물학과 현생 유인원에 기반한 예측보다 인류 진화에 대한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