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광산 재벌의 딸이 전설적 미술 컬렉터가 되기까지

이한나 2022. 9. 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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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예술중독자 / 메리 V 디어본 지음 / 최일성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 2만7000원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주제인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는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 리어노라 캐링턴의 책에서 따왔다. 캐링턴 등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을 많이 구매했던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마지막 저택은 현대미술관(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으로 변신해 베네치아 방문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대표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는 캐링턴의 연인이었지만 유대인 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도움받은 페기의 남편이 됐다.

남성 편력이 심한 부유한 상속녀로 저평가되던 여성 컬렉터를 다각도로 고증하고 분석한 전기가 나왔다. 2006년 나온 뒤 절판된 책을 16년 만에 다시 소환한 것은 최근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과 달라진 성평등 의식 등으로 재평가할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2권이나 내며 마녀처럼 인식됐던 페기에 대해 전기 전문 작가가 주변인들의 증언과 기록을 대조하며 짚어보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특히 페기의 절친이었던 오노 요코 덕에 '허심탄회하면서 지성적이고 요즈음 말로 힙한 여자'로도 보인다.

20세기 초반 예술계는 물론 정치 사회적 격변기의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니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듯하다. 특히 페기가 부조리극의 원조인 사뮈엘 베케트와 사귀고, 아나키스트 옘마 골드만과 교류하고 그를 후원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현대사회 격변기를 200% 만끽하고 살다간 여성인 셈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만 보면 여인으로서 불행한 삶은 피할 수 없었다.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사업가 집안 출신인 그는 13세 때 아버지 벤저민 구겐하임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로 잃으며 상속녀가 됐다. 20대 초반 코수술이 잘못되며 자존감 부족에 시달렸고 미남자에 대한 집착이나 자학적 관계로 힘들었다. 어찌 보면 갤러리스트가 된 40대에야 독립적 여성으로 자리 잡았다. 미의 개념을 재정의한 마르셀 뒤샹이 초기에 든든한 예술 멘토였다니!

그는 1938년 런던에서 갤러리 '구겐하임 죈'을 열고 장 콕토, 브랑쿠시, 칸딘스키 등을 선보이며 "페기는 모든 국제적인 취향을 가져왔다"는 찬탄을 받았다. 이후 뉴욕에서 열었던 금세기예술갤러리에서는 1941년 '31인의 여성 화가전'을 열었다. 당시 프리다 칼로, 캐링턴과 함께 미국 화가 도로시아 태닝도 소개했다(이 전시 때문에 태닝과 사랑에 빠진 에른스트와 결국 이혼한다). 1943년 알렉산더 콜더, 조지프 코넬, 잭슨 폴록 등 미국인 예술가들만 등장한 첫 번째 전시도 펼쳤다.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폴록의 천재성을 보고 후원했던 것은 국제미술의 축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는 데 있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페기가 없었다면 (미국 저명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열거한 화가들은 성공하지 못했거나 무반응, 판매 부진으로 창작활동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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