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악장 간 박수를 쳐도 괜찮다는 괴짜 음악가
"1악장을 즐겁게 감상하셨다면 큰 박수를 보내주세요."
영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를 앞두고 있을 때, 같이 무대에 오른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은 관중에게 박수 칠 것을 요구했다. 허프가 본 관중석의 사람들은 충격적이라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맘 놓고 박수 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지휘자의 요구는 해방감보다는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었을 때 인간이 두 손바닥을 치는 이유는 아마 선사시대의 뿌연 안개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중략) 감동적이고 신나고 짜릿한 것을 수동적으로 경험할 때, 폭발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배출구가 뭐라도 있어야 한다."
허프는 공연장에서 악장 사이의 박수를 '밥솥에서 증기를 분출하는 것'에 빗대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당시 연주했던 차이콥스키를 비롯해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그리그 등의 협주곡 중 박수갈채를 요구하는 악장들을 예로 들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그중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은 '누가 들어도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악장'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도중에도 관중이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악보를 엄격하게 고수한 것으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는 베토벤 협주곡 '황제'를 연주할 때 첫 카덴차(독주부)가 끝나고 박수받지 못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연주를 이어가며 60장 넘는 음반을 발표한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현대음악 작곡가인 허프는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수필로 다듬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한 번 더 피아노 앞으로'에는 그가 평생을 몸담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담았다. 원제처럼 '거친 생각들(Rough Ideas)'이 담겼지만 그의 표현 방식은 원제와 달리 쉽고 정갈하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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