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주년 정호승 시인 "시 쓰지 않았던 시간, 오만했던 것 같다"

진달래 2022. 9. 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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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지 않은 날을 모아 보면 15년 정도 됩니다. 시집 한 권을 쓰고 나면 1~2년씩 시를 쓰지 않곤 했어요. (돌아보니) 오만했지 않았나 이제는 열심히 씁니다. 이번 시집이 제게 준 가르침입니다."

정호승(72) 시인이 29일 저녁 서울 마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일상의 언어가 곧 시어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도 편안한 단어가 모여 위로와 안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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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29일 출간 기념 북토크서 소회 밝혀
"이번 시집이 준 가르침, 열심히 쓸 것"
"내 시의 수원지는 비극이라 생각해"
정호승 시인이 29일 저녁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창비 제공

"시를 쓰지 않은 날을 모아 보면 15년 정도 됩니다. 시집 한 권을 쓰고 나면 1~2년씩 시를 쓰지 않곤 했어요. (돌아보니) 오만했지 않았나… 이제는 열심히 씁니다. 이번 시집이 제게 준 가르침입니다."

정호승(72) 시인이 29일 저녁 서울 마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올해가 딱 50주년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수선화에게' 등으로 알려진 스타 시인인 그지만 돌아보면 평화롭게 시만 썼던 삶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작(詩作)이 고통스러워 시집 한 권을 내고 나면 다시는 시를 안 쓰겠다는 생각도 했고, 실제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던 젊은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택배')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시절이 오만하게 느껴진다고 그는 고백했다. 스스로 시를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조차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준 게 시였기에 "시는 내 삶의 절대적 존재"라고도 했다.

이날 북토크는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간 기념으로 열렸다. 50여 명의 독자들은 9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인의 시 낭송에 울고 솔직한 입담에 웃었다. 이번 시집은 '당신을 찾아서' 이후 2년 만에 낸 그의 열네 번째 시집이다. 일상의 언어가 곧 시어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도 편안한 단어가 모여 위로와 안식을 전한다. 허송세월에 대한 후회로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시를 쓴다는 그의 고백이 무색하지 않게 115편 대부분이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시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 지음·창비 발행·192쪽·1만1,000원

첫 시집('슬픔이 기쁨에게')과 신작 모두 슬픔을 주어로 삼았다. 우연은 아니다. 시인은 "슬픔은 다른 말로 '비극'"이라면서 "내 시의 발화점, 수원지는 '비극'"이라고 단언했다. 정호승 시 세계의 화두는 50년간 언제나 비극(혹은 슬픔)이었던 것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야말로 누구나 겪는 일이면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곧 시의 씨앗이다. 신작 표제시 '택배'의 첫 문장인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시집 제목으로 정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릴없이 받아들 수밖에 없는 슬픔을 노래하고자 했다.

이번 시집에는 유독 '떨어질 락(落)'자를 포함한 시 제목이 많다. 시인의 죽음에 대한 사유가 더 깊어진 까닭이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햇빛에 대하여 / 바람에 대하여 /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사랑한다는 것은 /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첫 시 '낙과(落果)'를 비롯해 '낙곡(落穀)' '낙수(落水)' 등 6편의 시가 떨어지는 이미지에서 죽음과 인생을 포착하고 있다.

이날 북토크에서 시인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시체와 같다"며 걱정했다. 토씨 하나, 행갈이 위치 하나가 모두 중요한 게 시다. 그런데 원문의 90% 이상이 훼손된 채 인터넷상에 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는 자신의 시 '강변역에서'가 '강변옆에서'로 바뀌어 유포되는 일도 봤고, 쓴 적 없는 시 옆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경우도 수없이 맞닥뜨렸다. 온라인상의 잘못된 시구(詩句)를 새긴 판각 선물을 받은 에피소드를 말하며 시인은 웃었지만, 고통 속에 낳은 자신의 시가 난도질된 모습을 본 작가의 슬픔은 얕지 않아 보였다. "진정한 독자라면 시집을 통해 원문을 찾아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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