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극 부르는 '돌봄 공백' 해결 국가가 나서야

최효정 기자 2022. 9. 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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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돌보며 나도 점점 살기가 싫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A씨가 최소한의 개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돌봄을 분담했더라면 존속살해라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19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가 오히려 축소되면서 이 같은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나 국회는 돌봄체계를 확대·구축하자는 요청에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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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정 사회부 기자

“동생을 돌보며 나도 점점 살기가 싫었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 법정. 연녹색 수의를 입은 30대 남성 A씨가 울먹이며 자신의 심정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그는 지적장애가 있는 여동생을 굶겨 죽인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이날 재판부로부터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혐의를 전부 인정한다면서도 자신이 혼자 여동생을 돌봤던 사정과 그로 인한 무기력증을 참작해달라고 했다.

A씨가 저지른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한 것도 그의 범죄를 엄벌에 처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재판을 지켜보면서 누구도 당당하게 그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혼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선 공판에서 그는 북받쳐 “동생이 없이 자유롭게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며 말하기도 했다.

재판에서 A씨가 털어놓은 그의 삶은 갑갑하고 외로웠다. A씨의 친부는 자녀들이 어릴 적 가출했고, 친모는 7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입원해 지냈다. A씨는 지적장애를 앓는 여동생을 홀로 돌보느라 취직도 못했다.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중증의 여동생 때문에 외출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매는 기초생활수급 등을 받아 살았고, A씨는 알뜰폰 계정을 만면 돈을 준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따랐다가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까지 됐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있던 A씨 남매의 비극은 그들만의 책임일까. 정부와 지자체가 A씨가 최소한의 개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돌봄을 분담했더라면 존속살해라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돌봄에 지쳐 가족을 살해하는 일은 비단 이 사건 뿐만이 아니다. 38년 동안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친모,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한 부모 등 올해에만 여러 건이 발생했다. 장애인 가족의 돌봄을 전담하는 사람들은 실직해 경제적 어려움을 얻고, 우울증을 겪게 되고, 이는 친족살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코로나19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가 오히려 축소되면서 이 같은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장애인 가족의 존속살해는 어떤 면에서 ‘사회적 타살’이다. 응당 나눠들어야 할 짐을 지친 가족에게만 모두 전가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정부나 국회는 돌봄체계를 확대·구축하자는 요청에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마치 지워진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장애인 가족들의 항변이다. 딱딱한 형벌로 이들의 죄를 논하고 벌하기 전에 구조요청부터 듣고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누구도 그들의 비극에 돌을 던질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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