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군 기지촌 성매매' 국가 책임 인정한 대법원 판결
대법원이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지난 29일 판결했다. 정부가 군사동맹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기지촌을 운영하며 성매매를 조장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국가의 인권침해 사건은 배상청구권에 소멸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비록 70년이 걸렸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을 환영한다.
기지촌 여성들은 6·25전쟁 이후부터 오랜 세월 ‘양색시’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이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됐다. 참다못한 이들은 2014년 6월 법적 투쟁에 나섰다. 40여년간 경기 파주·평택시 등 미군 기지 주변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 122명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운영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해 피해를 입었다며 각각 1000만원씩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1심은 원고 중 57명에 대해서만 500만원씩 지급하라며 국가의 책임 범위를 일부로 제한했다.
반면 항소심은 정부가 사실상 성매매를 조장하고 정당화했으며,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기지촌 성매매 여성의 성을 수단화했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 책임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 원고 중 74명에게 700만원, 43명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의무 등 마땅히 준수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은)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해 인격권 또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확인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한 가난하고 어린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국가는 안보 유지와 경제 성장을 앞세워 그 고충을 외면한 채 이들의 육체와 정신을 불법적으로 착취했다. 이제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이들의 명예회복과 경제적 지원을 위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대법원 선고가 지연되면서 피해자 중 11명이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는 2020년 5월 전국 최초로 기지촌 여성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내실 있는 피해자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사의 비극이자 한국 사회의 희생양인 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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