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인류학 뒤엎은 '아르디' 화석.. 발굴 막전막후도 충격적
■ 화석맨
커밋 패티슨 지음
윤신영 옮김│김영사
왕따 취급 받았던 화이트 교수
인류 최초의 조상화석 발굴까지
세계적 학자들과 갈등·질투 그려
과학적 진실은 순수하다는 믿음
실상은 인간적인 오류 넘쳐나는
진흙탕 싸움으로 탄생한 결과물
좋은 이야기는 늘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이야기에 담겨 있다면 더욱 좋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질투와 경쟁, 편견과 오류, 독선과 과오 등으로 온통 뒤덮여 박진감 넘치는 미스터리처럼 읽힌다면 아마도 눈을 뗄 수 없을 테다.
‘화석맨’은 이 모든 걸 갖추고 있다. 책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즉 아르디의 발굴과 연구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화석맨은 “오래된 뼈를 트럭 가득 수집하고, 일부 동료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경멸하는, 고독한 과학 분야를 점령한 연구자”를 말한다. 그 중심에는 팀 화이트 버클리대 교수와 그가 이끈 ‘미들아와시’ 팀이 있다.
1981년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해 유명해진 리키 가문에 밉보여 케냐에서 쫓겨난 화이트는 에티오피아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혁명과 내전이 반복되는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그는 날아드는 총알과 부패한 관료를 이기고 발굴을 이어갔다. 독특하게도, 화이트는 베르하네 아스포, 레무 아데마수, 요하네스 하일레셀라시에 등 현지인을 고용해 전문가로 육성하려고 애썼다. 유일한 예외는 일본 학자 스와 겐뿐이었다.
1994년 미들아와시 지역에서 그들이 찾아낸 아르디는 수상(樹上) 유인원의 특징과 땅에서 두 발로 걸으며 사는 이족보행 유인원의 특징을 함께 갖춘 놀라운 화석이었다. 마주 볼 수 있는 엄지발가락에 손은 크고 손가락은 구부러져 나무 위 유인원 같기도 했고, 골반의 해부학적 특성이나 평평한 발은 땅 위에서 이족보행 하는 인류와 비슷했다.
아르디의 존재는 인류 진화의 정설을 파괴했다. ‘루시’로 대표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100만 년 이전인 약 440만 년 전에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라는 인류가 존재했음이 화석 증거로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아르디는 이족보행을 했으나, 아직 나무에서는 내려오지 않은 인류 진화의 증거였고, 현생 인류의 최초 조상을 보여주는 완벽한 화석이었다. 인류는 현생 유인원과 인류의 공동 조상에서 출발해 아르디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완전 이족보행), 호모 하빌리스(도구 사용) 등 세 차례 진화적 적응과 안정기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9년 오랜 비밀 연구 끝에 화이트가 이 충격적 결과를 발표했을 때, 학계는 이상한 침묵에 휩싸였다. 아르디를 발견한 미들아와시 팀은 고인류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한 자이자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10여 년에 걸쳐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여러 인물을 인터뷰해 고인류학계의 ‘왕따’ 이야기를 추적해 밝혀낸다. 미들아와시 팀의 대표 연구자 화이트는 한마디로 성질 더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였으나, 지나친 공격성에 성마른 성격으로 곳곳에서 적들을 생산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편집증적 성격, 주변을 살피지 않는 독단성, 동료 학자들한테 폭언을 퍼붓는 무례함 등 성격적인 결함이 넘쳐났다. ‘고인류학계의 맨해튼 프로젝트’라 불릴 정도였던 미들아와시 팀의 극단적 비밀주의는 이를 심화했다.
화이트는 아르디에 대한 동료 연구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으면서, 사실은 물론이고 그 의미까지 분명히 말할 수 있기 전까지 해부학적 특징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아르디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여겼고, 진화의 열쇠를 쥔 채 동료 학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좋아할 사람은 당연히 드물었다. 이는 아르디 존재 발표 이후 벌어진 학계의 격렬한 거부반응과 기이한 침묵의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지난 60년 동안 있었던 고인류학의 성과와 내막을 이 책처럼 잘 보여주는 책은 드문 듯하다. 인류는 언제, 어떤 유인원에서 진화했는가, 걷기 편한 두 다리와 손재주 좋은 손, 커다란 뇌는 어떻게 생겼을까, 영장류와 인류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등을 놓고 세계적 학자들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막장극을 읽는 일은 진화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일이자, 연구 이면에 얽힌 정치·사회적 관계를 살피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과학적 진실은 순수하고 객관적이기보다 인간적 오류가 넘치는 진흙탕 싸움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700쪽, 3만2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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