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보호기 쓴 남녀가 경성에 가득".. 역사·문화로 본 '마스크 사회'

박동미 기자 2022. 9. 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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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금지, 일시 휴교, 의사의 완치 증명서를 받은 이후에만 출근 허용, 다른 사람들과 최소 90㎝ 이상 거리를 두고 대화하기, 환자의 가족 구성원은 완치 후 10일 동안 타인의 집 방문 금지. 코로나19 방역 수칙과 다를 바 없어 기시감이 드는 이 내용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1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에 실린 스페인 인플루엔자 예방법이다.

또한, 식민지 조선의 마스크 수용, 확산, 그리고 반응에서 감지할 수 있는, 당시 이 모든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근대 일본의 위생 문화와 조선총독부의 대처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연구자가 쓴 11편의 글은 연결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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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 파노라마│현재환·홍성욱 엮음│문학과지성사

집회 금지, 일시 휴교, 의사의 완치 증명서를 받은 이후에만 출근 허용, 다른 사람들과 최소 90㎝ 이상 거리를 두고 대화하기, 환자의 가족 구성원은 완치 후 10일 동안 타인의 집 방문 금지…. 코로나19 방역 수칙과 다를 바 없어 기시감이 드는 이 내용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1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에 실린 스페인 인플루엔자 예방법이다.

이어지는 말은 더 익숙하다. ‘외출 시에는 호흡보호기를 착용해 냉기와 진애의 흡입 방위’. 호흡보호기는 마스크를 일컫는다. 개인위생의 용도이자 전염병 방역의 도구로 마스크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제는 너무 친근해져 버린, ‘마스크 쓴 일상’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책은 마스크를 다양한 사회·정치·문화적 문맥에서 살핀다. 예컨대, 한국은 동아시아 다른 지역에 비해 마스크를 조금 늦게 받아들였는데, 1930년대에 이르면 경성의 겨울 거리엔 남녀노소 마스크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은 마스크를 쓰면 남성은 유약해 보이고 여성은 예쁜 얼굴을 감추는 꼴이라면서 이들을 “보기 거북한 마스크당들”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이때 마스크는 단순한 위생 용도가 아니라, “젠더화된 인공물”이 된다.

책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어떻게 마스크가 새로운 물질적,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가는지 충실히 소개한다. 이를 위해 멀게는 18세기 유럽의 흑사병부터, 수개월 만에 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1년의 만주 페스트, 그리고 1918~1919년 스페인 인플루엔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역용 마스크의 등장 양상을 추적하고, ‘마스크화된 시기’의 삶을 분석한다. 또한, 식민지 조선의 마스크 수용, 확산, 그리고 반응에서 감지할 수 있는, 당시 이 모든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근대 일본의 위생 문화와 조선총독부의 대처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연구자가 쓴 11편의 글은 연결성을 갖는다. 한마디로 제목처럼, 책은 마스크를 둘러싼 의학적, 역사적, 과학적 논쟁들과 정치적, 역사적 논의들을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 보이는 흥미로운 연구 모음집이다.

책은 한국의 두 과학자가 직접 쓰고 또 미국, 영국, 인도, 일본의 연구자들 글을 발췌해 엮었다. 우리가 지금 이 책을 읽고, 과거의 ‘마스크’를 지금의 눈으로 감각하듯, 언젠가 팬데믹이 종식되면, 우리는 다시 ‘지금’을 돌이켜 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달 1290억 개의 일회용 마스크가 버려져 플라스틱 폐기물로 쌓이고 있다는데, 미래의 그 때에 마스크는 코로나19에 대해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킬까. 이를 위해 지금은 이 책이 필요한 시간이다. 인류의 긴 호흡 속에서 변화해온 마스크의 다면적 가치와 의미를 안다는 건, 언젠가 도래할 그 때에도 조금 더 사물과 사회, 인간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290쪽, 1만8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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