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잇슈]재건축 '이주비 지원' 금지, 3개월만에 바꾼 이유

이하은 2022. 9.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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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도시정비법' 금지..최근 시행령서 '허용'
'재건축 중단' 우려 크고 경쟁 한풀 꺾인 영향

시공사가 재건축조합에 '이주비 대출'을 제공하는 것과 관련, 정부가 3개월 만에 노선을 바꿨다. 지난 6월에는 관련 법을 개정하고 재개발사업에만 이주비를 제안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최근 재건축·재개발에 모두 제안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고강도 대출 규제를 받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시공사의 이주비 지원 없이는 재건축이 사실상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자잿값 인상 등으로 최근 정비사업지에서 시공사 간 경쟁이 드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규제한다더니 3개월 만에 회수

정부는 지난 6월10일 재건축사업 시 "건설업자와 등록사업자는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을 제안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했다.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으로는 이주비와 재건축부담금 등을 명시했다.

국토교통부는 "정비사업의 과열 경쟁을 억제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을 제안할 수 없도록 했다"며 "위반한 자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그간 건설사들은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조합원들이 이주할 수 있도록 대출 보증을 섰다. 시공사의 신용보증을 통해 조합은 금융권에서 사업비를 대출받을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이 돈으로 세입자에 전·월세 보증금을 내어주거나, 임시로 거주할 전셋집 등을 마련했다.

관련 법이 마련되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서 이미 금지하고 있었지만, 처벌규정이 딱히 없어 건설사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이같은 법적 규제는 오는 12월1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법 개정 발표 3개월 후인 지난 27일 발표한 시행령에서는 다시 이주비 대여를 제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만 달았다. 규제 수위를 대폭 낮춘 것이다.▷관련 기사: 재건축 사업에도 '추가 이주비' 대여 허용(9월26일)

국토부는 "재건축사업에도 추가 이주비 대여 제안이 허용되면 원활한 사업추진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입찰 과정의 과열·혼탁을 방지하기 위해 이주비를 무상으로 지원하거나 은행의 대출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지원하는 등의 제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주비 지원은 조합 배려 차원"

정부가 재건축 이주비 대출 지원에 대한 문턱을 낮춘 건 재건축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지난 6월 법 개정 소식이 알려지자 당장 정비업계에서는 난색을 보였다. 시공사의 이주비 지원 없이는 거주민들의 이주가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관련 기사: [집잇슈]'이주비 제안' 막으려다 재건축 막힐라(6월22일)

이주비 대출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에 따라 받을 수 있다.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서울은 40%만 가능하고, 수도권 등 조정대상지역은 60%로 제한된다. 이마저도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금액을 기준으로 해 인근에선 전셋집을 얻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박종혁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 정비임대팀장은 "도정법 개정 취지는 시공자 간 과당 경쟁을 금지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제 이주비 대출은 조합에서 먼저 요청하는 편"이라며 "기본 이주비 대출로는 이주할 수 없으니 시공사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한풀 꺾인 영향도 있다.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건설사들은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는 대신 입찰에 신중히 참여하는 모습이다. 최근 자잿값이 급격히 상승한 가운데 착공할수록 손해인 현장도 생겼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시공사를 정한 전국 120개 정비사업지 중 시공사 간 경쟁이 발생한 곳은 15곳에 그쳤다. 건설사 1곳만 참여해 수의계약으로 '무혈입성'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원가는 상승하고 주택시장에는 찬바람이 부니 웬만큼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곳에는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는 한 건설사들의 과당 경쟁을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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