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반계리 산목(散木)의 장수 비결

2022. 9. 3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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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래된 나무들은 제각각 장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서 만난 은행나무 역시 오랜 세월을 견뎌온 연륜이 있었다.

못생기고 쓸모없는 무용(無用)의 나무가 장수하는 비결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이 두가지 장수 요건을 모두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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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지만 열매 열리지 않고 
곁가지만 남아 재목으로도 못써
마을 당산목으로 오래 살아남아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생 대신
나를 위한 삶 사는 것도 괜찮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래된 나무들은 제각각 장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서 만난 은행나무 역시 오랜 세월을 견뎌온 연륜이 있었다. 무엇이 저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게 했을까? 장수의 비밀이 궁금해졌다.

노자는 천지(天地)가 장구(長久)한 이유는 자생(自生)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보다 잘 살려는 의도를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장구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월하고, 잘나고,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던졌을 때 오히려 장수의 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낮추고 비우고 버리면 더 높고 차고 넘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역설이다.

장자는 노자의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철학을 산목(散木)과 문목(文木)으로 비유해 풀어낸다.

산목은 쓸모없는 나무다. 열매를 맺지 못해 사람들 손을 타지 않고, 재목으로 쓰지 못하기에 목수의 눈길조차 끌지 못한다. 배를 만들면 물이 새고, 그릇을 만들면 쉽게 부서진다. 관을 만들면 쉽게 썩고, 문짝을 만들면 진액이 흘러나와 틀어진다. 그래서 산목은 천년의 세월을 너끈히 견뎌낸다. 못생기고 쓸모없는 무용(無用)의 나무가 장수하는 비결이다.

반면 문목은 잘생기고 쓸모 있는 나무다. 열매는 달아서 사람들 손길이 뻗쳐 가지를 부러뜨리고, 꽃은 예뻐서 피기도 전에 꺾인다. 한주먹 되는 나무로 자라면 베어져 도낏자루로 쓰이고,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면 집 짓는 목수 눈에 들어 서까래나 기둥으로 쓰인다. 아름답고 잘생긴 나무지만 쓸모가 있어 유용(有用)의 덫에 걸려 요절하는 것이다.

산목이라고 모두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지켜줄 울타리가 있어야 비로소 완벽한 장수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사수(社樹)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마을 풍년과 안녕을 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고, 역병이 돌면 치유 기도를 올린다. 사람들이 모두 애지중지 아끼는 나무라 아무도 근접하지 못하게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누군가 들어가서 나무를 건드리려 하면 마을 사람들이 호되게 야단을 치며 쫓아낸다. 그래서 마을 수호목인 사수는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이 두가지 장수 요건을 모두 갖췄다. 은행이 열리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어 가지를 흔들어대지 않는다. 또한 가운데 굵은 본래 나무는 사라지고 곁가지 7개만 남아 재목으로 쓸 수 있는 길을 원천 차단했다. 그러니 아무리 재목이 필요하다고 해도 목수의 도끼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용 전략이다. 마을 안녕을 지키는 당산목이 돼 마을 사람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1964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스스로 죽지 않는 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울타리를 갖게 됐다. 사수의 전략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인정받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누구는 명예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몸을 버린다.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정답은 아니지만, 나답게 사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보다 나를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 큰 꿈은 아니다.

홍천군 서면 동막리에 석천학당이란 울타리를 만들고 정든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글 쓰는 일이 남 보기에 그리 빛나거나 유용한 인생은 아니지만, 산목의 길을 선택한 것에 오늘도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QR코드를 찍으면 소리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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