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감미로운 '늙은호박전'이냐 '매콤 달큼' 찌개냐..늙은 호박 vs 애호박

이문수 2022. 9. 30.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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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33) 늙은 호박 vs 애호박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외모지상주의가 인간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울퉁불퉁 못생긴 호박이 동글동글 매끄러운 수박과 자신을 비교하는 속담을 들으면 야속할 법하다. 하지만 호박 효능·성분·활용범위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결코 가볍게 볼 존재가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바야흐로 호박의 계절, 가을이 왔다. 달곰한 맛이 일품인 늙은 호박,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인 애호박을 활용한 다채로운 요리법을 찾아 맛 기행을 떠났다.
 

호박전은 겉은 바슬바슬하지만 중심으로 갈수록 갓 지은 쌀밥처럼 보들보들하다.


늙은호박전
늙었다고 무시 마세요~ 바슬바슬 감미로운 ‘노랑전’ 변신
경북지역 토속음식
굵은 면발처럼 긁어내 반죽

‘늙은 호박으로 전을 만든다고?’

파전과 김치전만 아는 ‘우물 안 개구리’라면 호박전은 생경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경북지역 토속음식이란다. 호기심 왕성한 기자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최근 호박전을 기가 막히게 부친다는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솔매기식당을 찾았다.

“호박전에 특별할 게 없는데 뭐 그리 먼 데서 오셨습니꺼.”

주인장 말투는 다소 퉁명스러워도 먼 곳에서 한달음에 온 손님을 맞이하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났다. 팔공산 갓바위 가는 길목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장인용 사장(47)은 곧 주황색 기운이 감도는 반죽을 보여줬다. 그의 말대로 호박과 밀가루가 범벅된 반죽은 평범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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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죽하기까지 과정은 꽤 지난하다. 딱딱한 호박을 반으로 쪼개고, 속에 씨와 실타래 같은 것을 제거한 후 동그랗고 작은 구멍이 여러개 나 있는 긁개로 겉껍질만 남을 때까지 도려낸다. 그러면 호박피가 금세 굵은 면발처럼 변하며 수북하게 쌓인다. 이것을 밀가루와 적절하게 섞는다. 물은 거의 넣지 않는다. 호박에서 저절로 수분이 배어 나오는 탓이다.

굽는 방식은 간단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흥건하게 두르고 표면이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2∼3회 뒤집어주며 굽는다. 이렇게 해서 완성한 호박전은 눈이 스르르 감길 정도로 감미롭다. 겉은 부각처럼 바슬바슬한데, 중심으로 갈수록 갓 지은 쌀밥처럼 보들보들하다.

장 사장이 집에서 호박전을 맛있게 만들어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첫번째는 ‘전이 쉽게 눅눅해지니 따뜻할 때 빨리 먹을 것’, 두번째는 ‘호박 본연의 단맛을 살릴 수 있도록 설탕을 너무 많이 넣지 말 것’이다.

늙은 호박 제철은 10월에서 12월 사이다. 좋은 호박을 고르려면 껍질이 윤기가 있는지, 골이 깊은지를 살펴보면 된다. 늙은 호박이 있다면 식탁이 더욱 푸짐해진다. 호박범벅·호박죽·호박떡은 기본이요, 김치·장아찌·찌개·조림 재료로도 손색이 없다.

늙은 호박은 나른한 가을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영양 덩어리다. 베타카로틴·비타민·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부기 제거 효과, 이뇨·해독 작용이 탁월하다. 특히 임산부나 위장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딱 맞는 음식 재료다.

경산=이문수 기자, 사진=현진 기자
 

아삭한 식감이 매력적인 애호박찌개. 푸짐하게 든 애호박이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달큼한 맛을 더한다.


애호박찌개
찌개 조연에서 주연으로…‘매콤 달큼’ 아삭한 맛에 매료된다
광주광역시 토속음식
채썰어 듬뿍·식감은 타이

다양한 호박 품종 가운데 애호박은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다. 숭덩숭덩 썰어 조리거나 무치면 소박한 밥반찬이 된다. 된장찌개·청국장·만둣국처럼 국이나 찌개에 넣는 건더기로도 요긴하고 잔치국수 같은 면 요리에 고명으로 올리면 싱그러운 푸른빛이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값까지 저렴하니 식탁에 자주 오를 수밖에. 두루두루 쓰임새 많은 애호박은 성격 좋은 친구처럼 어디에도 잘 어울리는 만능 농산물이다.


광주광역시 토속음식인 애호박찌개는 이름 그대로 애호박이 주인공이다.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생김새는 익숙하다. 첫인상은 김치찌개와 비슷하다. 시뻘건 국물에 돼지고기와 채소가 듬뿍 올라가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듯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채 썬 애호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는 것. 그동안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애호박이 돼지고기보다 더 많이 담겨 있다.

시내 어느 식당에 가도 애호박찌개를 주문하면 냉면 그릇만 한 대접에 국물과 건더기가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지역민은 음식을 받자마자 곧바로 밥을 말아 먹는다. 간혹 소면을 말기도 한다. 그 모양새나 먹는 방법 때문인지 애호박국밥이라고도 부른다.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맛은 뜻밖에 세지 않다.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이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은근히 얼큰하다. 먹다보면 달큼한 맛이 뒤따르는 것이 묘하다. 고깃국이라 기름질 만도 한데 오히려 시원하고 개운하다. 신선한 애호박이 느끼함과 텁텁함을 잡아준 덕이다. 그 가운데 백미는 식감이다. 애호박이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광산구 평동에서 2대째 애호박찌개 전문식당 골메골을 운영하는 홍동섭 사장(40)은 “파·생강기름에 고춧가루를 볶아 우리만의 고추기름을 만들어 쓴다”면서 비법을 귀띔했다. 고추기름에 돼지고기를 볶으면 맛이 깊으면서 깔끔하다.

애호박 식감의 비밀은 ‘타이밍’이다. 애호박을 미리 손질해두고 돼지고기가 완전히 익었을 때 넣는다. 너무 오래 익히면 뭉그러지고 덜 익히면 풋맛이 난다.

애호박은 당질과 비타민 A·C가 풍부하다. 채소 가운데선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영양소인 아연 함유량이 높다. 위장을 보호하는 성질이 있어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에게 유익하다.

광주=지유리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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