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평화를 위한 원자력', 70여년 거짓말의 역사
'풍요'의 약속은 끝내 '불신의 시대'로
저주받은 원자
미국의 핵기술 도박이 만들어낸 현재진행형 지구사
제이콥 햄블린 지음, 우동현 옮김 l 너머북스 l 3만원
1960년 2월 프랑스는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 보유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핵실험을 벌였던 장소는 자국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던 식민지 알제리였다. 알제리는 1962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독립전쟁에 투신했던 작가 프란츠 파농(1925~1961)은 한 해 앞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1961)에 이렇게 썼다. “독립은 방향 전환을 가져오지 않는다. (…) 똑같이 오래된 땅콩 수확, 코코아 수확, 올리브 수확… 이 나라에는 어떠한 산업도 세워지지 않는다.” 파농은 알았던 것이다. 제국 열강들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게 산업화·경제화 따위의 꿈을 제시할 것이나, 그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고.
미국의 역사학자 제이컵(제이콥) 햄블린(오리건주립대 교수)이 쓴 책 <저주받은 원자>의 제목은 파농의 글에서 ‘저주받은’이란 수식어를 따왔다. 핵 역사, 환경사 등을 주로 연구해온 지은이가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것은 ‘원자’의 역사와 그 배경에 깔린 국제정치학이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을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것을 입증한 미국의 핵기술은 그 뒤 70여년 동안 지구사를 좌우한 주인공이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그 역사적 흐름에 담긴 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 맥락을 밝혀내는 데 주력한다. 우리가 익숙한 ‘동서’ 갈등의 역사와 달리, 원자의 역사는 ‘남북’으로 갈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출발점은 미국이다. 종전 뒤 미국은 가장 앞선 핵기술을 보유한 ‘가진 자’였으나, 여기에 쓰이는 자원은 자신들이 ‘후진국’이라 여겼던 나라들에 의존해야 하는 ‘가지지 못한 자’이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는 한 가지 전략은 “그러한 나라(이른바 ‘후진국’)들에서 원자의 평화적 적용이 자급자족, 원료 상품들, 기초적인 위생과 의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독려하는 것”, 한마디로 핵기술을 미끼로 삼아 비대칭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핵기술 공유·협력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시종일관 분리적이었다. 핵기술은 위험한 것이므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넘겨줄 수 없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은 이미 경쟁자의 위치에 있었고,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의 제국 열강들도 순차적으로 ‘핵보유국’이 되기 위한 길에 올라탈 것이었다. 미국의 주요한 목표는 ‘다른’ 나라들이 “각자의 몫을 발견해 서구 편을 택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1953년 아이젠하워가 발표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은 이런 맥락으로부터 나왔다. 아이젠하워는 ‘가지지 못한’ 나라들을 겨냥해 핵기술이 농업·의학 등에서 빈곤·질병·경제에 대한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고, 이를 위해 핵기술을 공유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산업 발전에 갈급한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원하는 ‘전력 생산용’ 원자로에 대해선 이를 수출할 어떤 계획도 없었고, 식량·의학 등 민간적 활용에 대해선 장밋빛으로 포장만 했을 뿐 구체적인 비전이 없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수소폭탄 실험 등 미국의 핵기술 독주에 대한 국제적인 견제를 분산시키는 한편, 핵기술 공유를 미끼로 동서 갈등에서 대외정책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기 위해 감행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던진 도박패는 이후 전지구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모든 국제정치적 갈등의 근본적인 씨앗이 되었다. 미국·서방 세계를 중심으로 한 핵무기 보유국들과 이들을 상대로 핵기술을 얻어내려 한 아시아·아프리카·중동·남미 지역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갈등이 핵심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인지,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인지 가를 수 없는 상황 아래 자신의 패권을 위해 미국이 구사한 비대칭적인 대외 전략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들만 낳을 뿐이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 가나와 남아공은 모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받아들였으나, 미국은 범아프리카주의를 주창한 가나의 은크루마 정부가 아닌 인종분리주의를 유지한 남아공 정부를 지원했다. 핵기술에 대한 열망이 컸던 인도는 끊임없이 견제했으나, 이스라엘은 아예 동반자로 삼았다. 그 와중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방사선을 활용한 변이식물 육종 등에서 성과를 봤다고 홍보했지만, 식물학자 로널드 실로는 “국제원자력기구와 이를 후원하는 부유한 국가들이 식량 공급 증가에 일조하는 원자력의 역할에 대해 허위 주장을 펼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개발 프로젝트를 강탈했다”고 비판했다가 낭인이 됐다.
1964년 중국이 ‘핵무기 보유국’ 집단에 합류하면서, 말뿐이었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아예 “미국·소련·영국·프랑스 그리고 이제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수중에 핵무기가 들어가지 않게 막는”, ‘비확산’ 체제로 바뀌게 된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안보를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잠재적인 핵무기 프로그램을 탐지하는 등 치안 유지 및 감시·사찰 구실을 하는 기구로 탈바꿈했다. 비확산 조약의 체결은 “세계를 노골적으로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로 나누었을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원자로 취득을 간섭한다는 위협도 제기했다.” 이미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 담겨 있던 인종주의·식민주의가, ‘신식민주의’로 고착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불신의 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자의 장밋빛 약속은 기후변화의 위협 등을 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일부 학자들이 <뉴욕 타임스>에 ‘원자력 발전이 무해한 에너지 생산의 형태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지은이는 이 약속은 “세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 앞에서 달랑거릴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앞에도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70여년 동안 거듭됐던 ‘풍요’의 약속은 과연 세계를 어디로 이끌었나? 남쪽과 북쪽에서 각기 다른 맥락으로 핵기술이 가져다주는 ‘풍요’에 매달리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 특히나 되새겨야 할 질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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