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미소보다 못한 한미한 대학..지방 청년의 웃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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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의 상징성은 크다.
면 소재지에 위치한 대학에 다니는 정용과 진만.
이를테면 혁명과 전복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변혁이 때로 일어나는 모든 지대는 그들의 강 저편이다.
웃지만 "까닭 없이" 씁쓸해지는 세계로의 안내인데, 어쩌면 작가의 의도 같은 건 없다 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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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이기호 지음 l 마음산책 l 1만5000원
첫 장의 상징성은 크다. 면 소재지에 위치한 대학에 다니는 정용과 진만. 학교 정문 앞 편의점, 치킨집, 문 닫은 중국집, 피시방 외 논밭 산이라 정용의 아버지는 “무슨 대학교가 정미소도 아니고…”라며 입학 때 넋두리했었다. 겨울방학 교정은 더 적막하여 청년 둘은 큰마음 먹고 광역시로 나가기로 한다. “가서 우리도 촛불집회도 가고, 그 사진 찍어서 막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고, 뭐 그러자고.” 하지만 전날부터 내린 폭설로 시외버스가 끊긴다. 행여 차를 얻어탈까 편의점 야외 탁자에서 떨며 컵라면,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소주 네 병을 나눠마셨다. 챙겨온 양초 2개를 어느새 탁자 위에 켜두고 사진도 찍는다. 짜증 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진만 왈 “우리 지금 집회하는 거예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요!”, 그들을 가리켜 작가 왈 “진만의 목소리는 취기를 이길 수 없어 보였다”는 것.
이를테면 혁명과 전복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변혁이 때로 일어나는 모든 지대는 그들의 강 저편이다. 도강할 배는 이편으로 오지 않고, 오더라도 미취업 대학 졸업자로 학자금 채무자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 바쁘다. 부모의 세계도 강 저편은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이것이다. “…최소한 나쁘지 않은 거, 그러면 된 거지, 뭐…” 이혼한 가난한 부모를 향해서도 “(부모를) 용서하면 그 뒤엔 어찌해야 하는가? 그러면 그다음에 서로 잘 지내야 하는가? 저는 이해도 싫고 용서도 싫어요. 그냥 지금처럼 나쁘지만 않으면 돼요….” 하지만 “서글프고 수치스럽다”고 되뇔 일투성이며, 도무지 ‘까닭’을 찾을 수 없는 곳이 강의 이편인 셈이다.
작가 이기호에게 특유의 재담은 독자들로 하여금 강의 이편을 외면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윤리적인 비기이다. 웃지만 “까닭 없이” 씁쓸해지는 세계로의 안내인데, 어쩌면 작가의 의도 같은 건 없다 쳐도 무방하다. 블랙코미디 같은 실존에 대한 그저 진솔한 모사로서.
엽편소설처럼 각 장은 나름 완결성을 지니면서 전체 서사를 구성해낸다. 가난, 피로, 수모, 냉소 따위가 얼마나 분절적으로 각인되는지, 그러면서도 변치 않는 최저시급처럼 어찌나 일관되는지 잘 드러내는 형식이라겠다. 작가는 “지난 5년 동안 소설 속 두 인물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는데”도 “이 친구들의 쌓인 시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개별성도 결국 강 저편의 얘기인가, 까닭 없는 세계에선 개별성도 불허되는가, 작가는 맞선다. 말미도 독자들의 기대처럼 전개되지 않는다. “최소한 나쁘지 않은 거” 아래엔 늘 더 나쁜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 뻔한 세계에 서식하는 ‘지방’의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눈감지 마라>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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