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채굴 금지해야" 백악관 보고서.. 가상화폐시장 긴장

안상현 기자 2022. 9. 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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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美, 가상화폐 본격 규제 움직임

지난 8일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이 발표한 보고서 하나로 암호 화폐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미국 내 암호화 자산의 기후 및 에너지 영향’이라는 제목의 46쪽짜리 보고서에는 “전력 사용량이 많은 작업증명(PoW·Proof-of-Work) 방식의 가상 화폐 채굴(발행) 금지를 위해 관련 행정 조치나 입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작업증명 방식으로 운영하는 비트코인 채굴 금지 검토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작업증명은 고성능 컴퓨터를 대거 동원한 연산 경쟁으로 가상 화폐를 채굴하는 방식을 말한다. 전력 소모가 큰 만큼 대량의 탄소 배출로 이어져 기후에 악영향을 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백악관은 그다음 주인 16일 가상 자산 규제 목표와 구성을 정한 프레임워크(규제 틀)도 발표했다. 디지털 자산 기업의 무허가 자금 전송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테라·루나 사태로 위험성이 불거진 스테이블 코인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최근 미 백악관이 직접 손을 걷어붙이고 가상 화폐 규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가상 화폐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관련 업계와 투자자들은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래픽=김의균

◇가상 화폐 통제력 강화 나선 美

백악관이 가상 화폐 규제 명분으로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탄소 배출이다. OSTP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가상 화폐와 관련한 전 세계 총 전력 사용량은 연간 1200억~2400억kWh(킬로와트시)로 추정된다. 세계 전력 생산량의 0.4~0.9%에 육박하는 규모다. 호주나 아르헨티나가 연간 생산하는 전력량보다도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큰 골칫거리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가상 화폐 전체 전력 사용량 중 60~77%를 차지한다고 추정되는데, 중국 정부의 규제로 중국 내 채굴이 위축되면서 지금은 미국이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지가 됐다. 탄소 저감과 친환경 정책을 공약으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선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 것이다. OSTP는 “미국의 가상 자산 활동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연간 약 25~50톤 배출되는데, 이는 미국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0.4~0.8% 수준이며 미국 철도에서 사용하는 디젤 연료에서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가상 화폐 규제에 나선 데는 적성국에 대한 경제제재 실효성을 끌어올리려는 목적도 있다. 가상 화폐가 북한·러시아 같은 국가들이 서방 제재를 우회하는 수단인 동시에 국가 배후 해킹 집단의 ‘돈줄’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을 배후로 둔 해킹 집단 ‘라자루스 그룹’은 지난 3월 베트남 개발사 스카이마비스가 개발한 블록체인 비디오 게임 ‘엑시 인피니티’를 해킹해 약 6억2500만달러(약 8894억원) 상당의 가상 화폐를 훔쳤다. 역대 가상 화폐 해킹 중 최대 규모 사건으로, 라자루스 그룹은 이더리움 지갑을 활용해 돈세탁을 시도하다 미국 재무부에 적발돼 약 4억2375만달러(약 6030억원)를 압류당했다.

비슷한 일이 빈발하자, 백악관은 가상 화폐를 활용한 자금 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막으려 은행비밀유지법(BSA)과 정보유출방지법 등 법 개정 검토에 착수했다. 가상 화폐 거래소 등 디지털 자산 서비스 기업에서 문제 있는 자금 전송이 발생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고, 가상 자산 범죄의 기소 범위도 넓히기로 했다.

가상 화폐를 기반으로 한 금융 시스템인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에도 손을 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디파이는 가상 화폐 담보 대출 등 가상 화폐에 내재된 자동화 프로그램(스마트 콘트랙트)과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반의 금융 서비스 생태계로 최근 해킹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사이버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백악관은 “최근 북한 라자루스 그룹의 가상 화폐 탈취 사례에서 보듯 가상 자산이 불량 정권(rogue regime)들의 활동 자금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감독 체계의 빈틈을 파악하고자 재무부가 내년 2월까지 디파이의 위험성 평가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상 화폐 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도 가상 화폐 규제를 서두르게 된 이유다.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가상 자산 시장을 기존 자본 시장과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며 “투자자를 보호하는 증권법은 신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계속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악재만은 아냐” 희망도

백악관발(發) 가상 화폐 규제는 금리 인상, 세계 증시 침체와 맞물려 가상 화폐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다. 가상 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의 경우 9월 말 현재 1만8000달러대까지 떨어져 팬데믹 이후 최저치를 갱신했다. 투자 심리가 거의 무너진 상황이라 가상 화폐 빙하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선 미국의 가상 화폐 규제가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성숙한 산업을 위한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업 SBP의 엘리엇 데이비드 책임자는 “규제 당국은 (가상 화폐와 관련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하고, 그를 위해 업계와 직접 협력할 의향이 있는데 이건 정확히 우리가 정부에 요구해온 것”이라며 “백악관 보고서의 대부분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와 가상 화폐 산업계의 소통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럿거스대학 비트코인 정책연구소 트로이 크로스 연구원도 “보고서가 나쁘게 보일지 모르지만, 바이든 정부가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긍정론자들은 지금까지 가상 화폐 산업이 많은 비판과 규제를 받으며 발전해왔다는 점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에너지 낭비’라는 비판 속에 전력원을 대체하거나 채굴 방식을 변경하는 등 대안을 찾아온 것이 그런 예다. 시총 2위 가상 화폐인 이더리움은 전력 소모량이 작업증명 대비 99% 이상 낮은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지난 15일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마쳤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전 세계 가상 화폐 전력 사용량의 20~39%를 차지하며 비트코인 다음으로 많은 전력을 소비했는데, 이번 업그레이드로 에너지 낭비 논란에서 다소 자유로워졌다. 비트코인도 신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비율을 점차 늘리면서 지난 8월 기준 채굴에 사용된 전기 중 30%를 신재생에너지에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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