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정치는 가능하다

한겨레 2022. 9. 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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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7월2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정치개혁특별위 구성결의안이 처리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한동안 현 정부를 보면서 과거를 향해 돌아가는 시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와 한국 사회 시계 초침은 부지런히 미래를 향해 가는데, 현 정부의 초침은 더 부지런히 과거로 가고 있는 느낌.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정부의 시계는 그저 오작동하고 있었다. 어떨 때는 2022년에, 어떨 때는 2002년이나 1992년에 서서 가끔은 오른쪽으로 돌고 가끔은 왼쪽으로도 도는 시계.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현실감각을 잃게 하는, 그런 시계 같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과연 이 정부만 그런 걸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정부가 불과 몇달 전 대한민국 선거권자의 77.1%가 투표에 참여해서 만든 정부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불과 0.73%포인트 차이였다는 이유로 애써 이 정부의 정당성을 부인하려 하지만, 이 정부가 아무런 하자 없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출범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최근 대통령 국정지지도를 보면, 현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았던 유권자들만이 아니라, 선택했던 유권자들도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몰랐다.

하지만 그때 투표자 다수는 그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오작동하는 정부와 정치를 바로잡는 일은 지난 대선에서 우리의 집단적 선택이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짐작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그때 이 격변의 시대 대한민국 정치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복잡한 심경들이 모인 집단적 결과가 현 정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파고를 함께 넘었지만, 그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실직이든 폐업이든 집값이든 말이다. 세계가 함께 겪는 고통이라고 해도 그게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내 삶을 이런 고난에 밀어 넣은 그 ‘무엇’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성의 질서 밖에서 누군가 일거에 해법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사람이 많았다. 또 어떤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하다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현 정부가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들이 집단으로 모여 만든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해법도 소위 ‘1찍, 2찍’을 나눠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머리를 맞대는 것이어야 한다.

여전히 우리는 어렵고 혼란스럽다. ‘코로나19’는 아직도 꼬리가 길고, 유례없는 기후재난이 닥치고, 금리와 물가는 오르고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치는데, 무엇 하나 뚜렷이 설명되는 건 없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지금은 지구와 인간이, 국가들 관계가, 시장이 동시에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다. 혼란스러운 건 미국 시민이나 독일 시민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다. 어디서건 이 격변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은 정치이며, 정치를 통해 정책을 바꾸고 국가적 자원을 나누면서 해결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와 정부가 오작동하고 있다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영역에서나 기성의 질서를 지탱하는 논리는 강력하다. 정치에서도 그렇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아, 정치인이 제 머리 깎는 건 불가능해, 이 제도는 이래서 문제고 저 제도는 저래서 문제래, 어차피 방법은 없어….’ 이런 논리에 수긍하는 순간,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을 바꿀 방법은 사라진다. 오작동하는 정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좌절하기보다 그 무엇이라도 선택을 할 때다. 기회비용을 치러야 할 테지만 지금의 선택이 잘못됐다면 바꾸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고통과 혼란을 감당하기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발이라도 움직이는 게 낫다. 어쨌든 기존 제도가 바뀌면 현 제도 안에 안주하던 정당과 정치인들은 긴장하게 되고 시민들 눈치를 보게 된다.

2024년 4월 총선을 치르려면 2023년 4월까지 선거법을 바꿔야 하기에 국회에는 이미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있고, 국회의장에 이어 제1야당 대표가 개헌 논의도 제안해 놓은 상태다. 헌법, 선거법, 정당법 개정 논의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고 다양한 공간에서 다른 정치에 대한 상상을 이야기해보자. 지금은 다른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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