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뿌리

한겨레 2022. 9. 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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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의사인 친구 하나가 무조건 배가 아프다는 아이들 말속에서 어디가 아픈 건지 알아차리는 게 의사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 적 있다.

평생 건축물 설계를 해오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대표적인 게 온돌이다.

유아 시절 가족생활에서 체화한 감각적 경험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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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소아과 의사인 친구 하나가 무조건 배가 아프다는 아이들 말속에서 어디가 아픈 건지 알아차리는 게 의사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 적 있다. 평생 건축물 설계를 해오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자기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집을 짓겠다 결심하고 수년 동안 인터넷과 잡지를 뒤져 멋진 사진을 모으고 집 설계를 의뢰하러 온 ‘모범’ 고객조차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고객과의 첫 만남 때는 원하는 조건을 찬찬히 다 들어본 뒤, 자신이 꿈꾸는 ‘드림 하우스’ 평면도를 그려보라고 권한다. 그걸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그리게 하고 모두의 도면을 모아 종합하면 열에 아홉은, 지금 그들이 현재 사는 아파트 평면이 된다. 우리의 인식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우월하거나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식문화에서 많이 나타나고 주거문화에서 특히 심하다. 대표적인 게 온돌이다. 온돌의 장점은 잘 알려졌지만 단점은 의외로 무시된다. 온돌에 ‘모태적’ 애착이 없는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전통 구들과 아궁이는 분명 그 옛날,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발명품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우리의 확신과는 많이 다르다. 온돌이 가지는 문제점도 함께 보이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 건물을 짓는 논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두달 전, 새로 출간한 책 북토크 자리에서 한 관객이 화난 투로 물었다. 건축가님은 책에 우리 온돌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했던데, 건강에도 좋고 우리 체질에도 꼭 맞는 온돌을 왜 반대하십니까? 나는 되물었다. 선생님은 이부자리에서 주무십니까, 침대에서 주무십니까? 그는 침대에서 잔다고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왜 온돌을 반대하십니까? 유머 섞은 내 엉뚱한 반문에 그는 어리둥절했지만, 눈치 빠른 다른 관객 몇은 폭소를 터트렸다. 따뜻한 방바닥 위에 살면서도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는 생활 속 모순을 꼬집은 말이었다.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은 별개다. 익숙한 것과 잘 아는 것도 별개다.

인간의 오감 중 촉각은 후각과 더불어 가장 원초적이고, 일단 그것이 습관화, 체내화되면 더는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열원과 직접 접촉으로 온기를 느끼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피부의 직접 접촉이 없으면 춥다 덥다를 떠나 기본적인 감각의 결핍부터 먼저 느낀다. 한겨울 발밑에 전해지는 온기가 부족하면 춥다고 느끼기에 자신도 모르게 난방 온도를 올리고, 발이 따뜻해질 즈음이면 실내 온도는 어김없이 30도를 넘는다. 실내에서 맨발로 지내니 조그만 먼지에도 민감해지고 그래서 바닥은 잦은 물청소를 견딜 수 있게 화학 코팅 처리된 강화마루나 장판류로 한정된다. 한국의 모든 집 인테리어가 비슷한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온수 파이프를 설치하느라 바닥은 두꺼워지고 건물은 무거워질 뿐 아니라, 바닥 난방장치를 들어내고 새로 설치하는 게 만만치 않으니 그냥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쪽으로 유도한다. 건축은 자연 자원을 오직 고갈시키기만 하는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행위다. 건축 산업의 재활용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사는 문제에서 개인의 버릇과 선호는 ‘옳다, 그르다’로 따져지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유아 시절 가족생활에서 체화한 감각적 경험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공간은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지만 아무도 왜 그런지 자문하지 않는 이유다. 익숙함에 기인한 ‘좋다, 싫다’만 있을 뿐이다. 취향이란 이름의 익숙함은, 많은 부분 게으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은 딱 그만큼만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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