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이다음에 커서

김민제 2022. 9. 2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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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오석환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이 지난달 2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제 | 사회정책팀 기자

아이가 커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되면 느닷없는 어른들의 질문에 맞닥뜨려야 한다. ‘올해 몇살이니?’ ‘이름은 뭐야?’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

세번째 질문은 조금 난감했다. ‘20~30년 뒤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질문도 자주 받다 보면 내성이 생긴다. 미술학원에 다닐 때는 화가가, 새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도구를 만지는 연구원을 본 날에는 과학자가, 소설책에 재미를 붙인 뒤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어린 시절의 나는 무턱대고 말했다. 내가 뭐라고 답하건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그땐 그런 게 덕담이라고들 했다. 나 또한 그렇게 믿었다.

진학과 각종 시험 등을 거쳐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20여년 뒤의 나는,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대단한 위인이 되리라는 다짐을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더는 무언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도 잠시, 여전히 쓰임새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고 있다. ‘이야기가 되는’(보도할 가치가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일상이 됐다. 한발 더 나아가 ‘이야기가 되는 취재원’은 누구이며 스스로 ‘이야기가 되는 인간’인지 되물으며 나 또는 주변 인적자산의 가치를 따지려는 마음이 일기도 한다. 그 동기야 복합적이겠지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엔 어릴 적 들었던 덕담이 나타난다.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의 영향력은 잔잔하지만 끈질기다.

새삼스레 옛 덕담들에 비춰 지금의 일상을 곱씹어보는 것은, 최근 정부 정책 발표 때마다 콕콕 박힌 ‘인재’라는 단어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인 지난 7월 ‘10년간 반도체분야 핵심인재 15만명을 키워내겠다’는 정부합동대책이 발표됐다. “미래산업의 핵심이자 국가안보 자산인 반도체산업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라며. 8월엔 ‘5년 동안 디지털분야 인재 100만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도 나왔다. 이번엔 “디지털산업 전문인재와 각자의 전공분야에 디지털을 융합하는 인재 등 디지털시대의 주인공이 될 인재를 양성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담당 기자로서 얼마나 현실성 있는 계획인지, 사교육을 조장하는 등 부작용은 없는지 따져봤으나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대규모로 양성한다’는 포부 자체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물음표가 남아 있다. 우리는 모두 인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인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지난 27일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식에서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은 교육으로 흥한 나라이고 인적자산이 국가 최고의 자원인 나라”라고 말했다. 문제는 온 나라가 ‘인재로 자라렴’ 하고 외치는 땅에서 인재 되기에 실패한 경우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때, 능력을 갖추려면 노력뿐만 아니라 자본과 정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원하는 자리에서 요구하는 스펙과 내가 가진 그것이 큰 차이가 날 때 깨달음의 시간이 찾아온다. ‘잘나고 이름난 사람이 되긴 아마도 어렵겠다’고 자신과 타협하는 시간 말이다. 타협에 다다르는 과정에서는 ‘나는 왜 이럴까’ ‘난 이것밖에 안 되는가’라는 자괴감에 짓눌리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넓은 의미의 인재 풀에 진입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자신이 인재임을, 자신의 효용성을 증명해야 하는 긴 시간이 남아 있으니. 애초 훌륭한 무언가로 거듭나라는 요구가 없었다면,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같은 응원을 들었다면, 삶의 자세와 고충의 크기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반도체 인재와 디지털 인재와 인공지능 인재와 각종 전공분야를 융합한 인재가 이끌어갈 국가의 앞날은 창창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보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지난한 노력과 포기, 자괴감 등이 깔려 있다. 인간을 인적자원으로만 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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