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들이받아 넘어뜨려도 전깃값 안 물어준다고?"

세종=김훈남 기자 2022. 9. 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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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벼랑 끝 한전, 올려야 산다①

[편집자주] 현재 한국전력은 전기 1만원 어치를 사서 6000여원(산업용 기준)에 판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다. 전 정부에서부터 전기요금 인상이 미뤄진 가운데 연료비가 급등한 탓이다. 올해 30조원에 달할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전의 유동성 위기와 자본잠식을 막을 방법을 찾아본다.

(양양=뉴스1) 최석환 기자 = 제 9호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3일 강원 양양군 양양읍 거마리 인근 도로에서 전신주가 기울어져 있다. 양양군에 따르면 이날 시간당 최대 124.5㎜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양양군청 제공) 2020.9.3/뉴스1

#. A라는 운전자가 실수로 전신주를 들이받아 그 일대 전기 공급이 일시 중단됐다고 치자. 이때 한국전력공사는 A씨에게 설비 수리비와 별개로 그 시간 동안 전기를 팔지 못해 생긴 손해액만큼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지장전력손해배상금'이라고 한다. 전력판매단가에서 연료비단가를 뺀 금액에 해당 시간을 곱해서 산출한다.

하지만 지금 한전은 전기를 팔 때마다 손실을 본다. 전력판매단가가 연료비단가보다 낮기 때문이다. 전기를 공급하지 못해도 손해볼 게 없으니 지장전력손해배상금은 사실상 0원에 가깝다. 전신주를 들이받아 전기 공급을 끊어도 그에 대해 거의 배상을 하지 않는 희한한 상황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은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한 탓에 한전이 자본잠식 위기에 몰렸다. 올 상반기에만 14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한전의 올해 연간 적자는 약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회사채 발행 한도 소진으로 내년 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에 정부는 산업용을 중심으로 전기요금제 개편을 통한 추가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 중이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30일쯤 2022년 4분기 전기요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10월부터 ㎾h(킬로와트시)당 4.9원의 기준연료비 인상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이미 연간 한도까지 올린 연료비 조정단가를 추가로 올릴지가 관건이다.

정부는 계절·시간대별 요금 체계 개편을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고, 회수율이 25%에 그치는 농업용 전기요금제를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가계의 전기요금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대신 산업·농업 분야의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전력소비 절감을 유도해 한전의 적자를 줄인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적극 나서는 것은 한전의 위험한 재무상태 때문이다. 올 상반기 한전은 연결기준 매출액 31조9921억원에 영업손실 14조3033억원을 기록했다. 연료비와 전력구입비 상승으로 영업비용이 46조29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조4233억원(60.3%) 급증했다. 반면 전기판매 수익은 29조4686억원으로 같은 기간 2조5015억원(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권사 10곳이 최근 3개월간 추정한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은 평균 28조8423억원으로, 하나금융투자는 35조4000억원대 영업손실을 전망하기도 했다.

역대급 적자가 이어지면서 한전의 부채도 급증했다. 올해 6월말 기준 한전의 부채비율은 299.1%로 지난해 말에 비해 75.9%포인트(p) 급등했다. 부채는 20조원 늘어난 165조7988억원으로 집계됐다. 8월말 기준 순차입금은 25조원으로, 최근 5년 평균치인 7조3000억원의 3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적자로 부족해진 자금은 채권 발행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문제는 채권 발행 한도마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의 사채발행액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를 넘지 못한다'고 규정한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제16조에 따라 한전의 사채발행 한도는 지난해 말 기준 91조8000억원에서 △올해 말 29조4000억원 △2023년말 6조4000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부족자금의 90% 이상을 사채로 조달하고 있는데 현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채발행 한도 초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상장 공기업 최초로 채무불이행과 완전자본잠식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시가총액 12조원대 상장사인 한전이 자본잠식 위기에 몰릴 경우 주식·채권 등 금융시장에 불어닥칠 충격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한전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전력설비 투자 위축도 문제다. 한전은 현재 동해안 HVDC(고압직류송전) 설비 구축사업과 노후 송·배전 선로 교체,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보완을 위한 연계망 구축 등 대규모 설비 투자 과제를 떠안고 있다. 일례로 동해안 HVDC 건설이 지연될 경우 현 전력망 송전한계 초과로 신한울 1·2호기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각종 설비공사 발주가 중단되고 대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한전의 6500여개 협력사의 경영난 등 전력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정부가 '복(復) 원전'을 국정과제로 설정한 상황에서 한전을 앞세운 원전 수출 등 동력역시 훼손될 수 있다. 또 정부 정책에 따라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로 묶인 것에 대해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 국내외 한전 주주들의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전이 전기를 (㎾h당) 250원에 사서 120원에 팔고 있어 판매를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한전이 무너지면 전력산업 전체가 위태하고 일자리나 전력 공급 안정성 훼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유럽은 이미 5배에서 7배까지 전기 요금을 올렸고 일본도 연초대비 40~50% 인상했다"며 "최소한 ㎾h당 10원 정도를 올리고 전력 다소비 업종 중 영업이익이 좋은 산업은 부담을 더지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6월 30일 서울시내 다세대주택의 전기 계량기 모습.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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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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