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하니 학생수 늘었다" 제주 선흘초, 작은 분교의 기적
30일 본교 승격식…1995년 분교 개편 이후 27년만
텃밭, 동물 기르기, 동백동산 활용 생태교육이 비결
공동주택 건설 없이도 2015년 21명서 현재 89명으로
29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의 선흘 초등학교. 천연잔디 운동장에서는 체육 시간을 맞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학교 건물 뒤편으로 가자 여느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이 펼쳐졌다. 학생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재배했다는 텃밭에는 대파 등 각종 채소가 싱그러운 초록빛을 뿜어냈다. 텃밭 옆 울타리 속에는 닭과 오리, 오골계, 토끼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먹이를 주며 기르는 동물들이다.
선흘초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람사르습지인 동백동산과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각종 희귀 동·식물을 품은 천연림과 습지로 이뤄진 동백동산을 자연학습장이자 생태 놀이터로 활용한다.
제주 중산간 마을의 작은 학교, 선흘초등학교가 자연과 함께 하는 생태교육으로 학생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분교에서 본교 승격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선흘초등학교는 30일 오전 10시 학교 운동장에서 본교 승격식과 기적의 놀이터 개장식을 함께 연다고 29일 밝혔다. 선흘초는 1995년에는 학생 수 감소로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로 개편됐던 곳이다. 27년만인 올해 3월 1일 본교로 공식 승격됐다.
선흘초의 본교 승격은 저출산에 따른 취학인구 감소, 이농 현상 등으로 시골 마을의 학교 대부분이 분교로 개편되거나 폐교되는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작은 농촌마을인 선흘에 큰 기업이 유치된 것도 아니고, 다른 마을처럼 인구 유입을 위해 공동주택을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흘초 역시 2014년 전후로는 학생 수가 20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선흘초의 기적’은 마을이 품고 있는 환경자산을 활용한 생태교육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학교는 2015년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생태교육을 추진했다.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 텃밭을 가꾸고 한 달에도 여러 차례 동백동산에서 마을주민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자연체험을 한다. 곶자왈 전문가가 학교로 찾아와 생태 놀이를 하고, 학생 전원이 타악기를 직접 다루며 브라스 밴드 일원으로 활동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머리를 맞대 제주의 오름, 자연을 본뜬 놀이터도 운동장 안에 조성했다. 학생들은 ‘차츰차츰 놀이공장’이라는 놀이터 명칭까지 지었다.
제주로의 이주 열풍 속 선흘초의 생태교육은 입소문을 타면서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학생 수는 2015년 21명에 불과했으나 2017년 54명, 2019년 72명, 2021년 110명, 올해 9월 기준 89명으로 크게 늘었다.
안미영 교감은 “선흘초는 이전에도 교정 내 후박나무를 에워싼 시멘트를 걷어내고 나무벤치를 설치하는 등 최대한 자연과 함께 하는 학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가 오늘에 이르렀다”며 “본교 승격식에서는 학생들로 구성된 선흘푸른울림브라스밴드 축하 공연, 분교에서 초등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27년간 고군분투한 선흘교육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건강생태학교 백서도 함께 선보인다”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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