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육아휴직 10명에 1명꼴 불과 .."결국엔 퇴사 엔딩"

이현정 2022. 9. 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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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대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강요받기도
대체인력뱅크 활용도 떨어지고, 대체인력 지원금도 유명무실
전문가 "중소기업 공동 직장어린이집 증설 절실"

[아시아경제 이현정 기자] 임신 6주 차를 맞은 중소기업 직원 이정호 씨(34)는 근무 중 갑작스럽게 몸 상태가 나빠져 원치 않은 '임밍아웃(임신과 커밍아웃을 합친 말)'을 하게 됐다. 그러자 회사는 곧바로 퇴사 계획을 물어왔다. 이 씨는 "임밍아웃하자마자 퇴사를 권고 당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임신부 김지수 씨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 씨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직원) 선례가 없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곤혹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체인력 채용공고를 낸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을 가능성이 크고, 설령 지원자가 있어도 그를 정규직으로 뽑으면 결국 내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든 퇴사 엔딩일 확률이 높다"라고 하소연했다.

남성도 육아휴직을 당당하게 쓰는 시대지만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에선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통계청의 '2020 육아휴직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63.5%가 300명 이상 기업의 종사자였다. 육아휴직 사용률을 기업체 규모별로 보면 300명 이상 기업에서 31.3%로 가장 높았다. 50~299명 22.6%, 5~49명 19.2%, 4명 이하 9.8%로 직원 규모 순서대로 사용률이 떨어졌다.

중소기업에서는 퇴사를 간신히 피해도 육아휴직 대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로 내몰리기도 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자녀 1명당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합산해 최대 2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하는 경우 단축 후 근로시간은 주당 15~35시간은 돼야 한다.

사람이 모자라는 중소기업에서는 육아휴직 대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직원을 설득하는 사례가 많다.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 전산망을 통해 집계한 기업 규모별 육아기 단축 근로 사용자 수를 보면, 2021년 기준 대규모 기업이 5615명, 중소 규모의 우선지원대상기업은 1만 1074명으로 중소기업에서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출산휴가와 육아기 단축 근로에 대한 대체인력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대체인력 구하기도 수월하지 않자 정부는 2004년부터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육아휴직 장려금과 별도로 주던 대체인력 채용 장려금 제도를 올해 폐지했다. 대신 만 12개월 이내 자녀에 대해 최초 3개월간 월 200만원을 지원하는 특례를 신설하는 등 제도를 개편했다.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대체인력뱅크도 유명무실하다. 특히 결혼과 출산 연령대가 높아진 요즘, 회사에서 주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팀장급 육아휴직 수요에 맞는 대체인력은 돈을 얹어줘도 올까말까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중소기업에 오려는 사람 자체가 모자라다 보니, 대체인력뱅크 활용률도 저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체인력 채용은 상대적으로 대체가 쉬운 간호조무사, 보육교사 등 일부 업종에 한정돼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박사는 "정부가 사업주에게 대체인력채용 장려금을 지원하고 대체인력뱅크를 운영하는 등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다고 말했다. 강민정 박사는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려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직장어린이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보육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맞벌이를 위한 어린이집, 중소기업 공동 어린이집을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정부는 10년째 설치비와 운영비를 지원하며 중소기업 공동 어린이집 공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어렵게 뽑아도 운영에 애로사항이 많아 문을 닫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전국 직장어린이집 1248개(2021년 기준) 가운데 중소기업 공동 직장어린이집은 올해 8월 말 기준 110여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현정 기자 hyunj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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