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혐오했다"던 아이들,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서부원 입력 2022. 9. 2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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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자발적으로 북한 이해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서부원 기자]

 작년 통일교육의 일환으로 연 통일티셔츠 공모전에서 최종 선정된 디자인. 2040년에 통일을 이루자는 염원과 통일이 머지않았다는 '불원복' 한자를 적어넣었다. '불원복'은 구한말 의병들이 국권회복을 염원하며 가슴에 품은 태극기에 새겨둔 글귀다.
ⓒ 서부원
 
작년 한 해 동안 통일을 주제로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통일 티셔츠 도안 프로젝트'를 함께한 적이 있다. 취지를 설명하고 디자인을 공모하면서 분단의 현실과 통일의 당위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최종 선정된 도안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학년 전체에 배부했다.

도안이 새겨진 티셔츠를 내내 입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가랑비에 옷 젖듯 통일교육이 이루어질 거라 여겼다. 여름 한철 교복을 대신해 입고 다닐 수 있도록 했고, 등하굣길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까지 화제가 되었으니 나름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금껏 입고 다니는 아이도 있다. 

티셔츠에는 한 아이의 바람이 담겼다. 2040년까지 통일을 이루자는 것. 그의 솔직한 해명에 따르면, 자기 세대가 40대 중년 즈음이 될 때까지도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영원히 불가능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예언'이었다. 

"2400년이 돼도 통일되기는 글렀어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통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데면데면한 일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핵 무력을 법제화하고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을 언급하는 등 날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맞서 정부는 핵이 협상의 수단이 될 수 없고 북한의 무력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할 거라며 날을 세웠다. 

통일은커녕 전운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질적인 비핵화 노력을 한다면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북한은 '담대한 망상'이라고 치받았다. '윤석열이라는 인간 자체가 싫다'고 험담을 쏟아내며 대화의 창구마저 닫아버린 모양새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판문점 선언 당시의 가슴 뛰던 기억은 백악기의 화석처럼 사라졌다. 휴전선을 넘나들며 불던 훈풍은 멎고 어느새 살을 에는 삭풍만 몰아치고 있다. 아이들의 입에서도 통일과 평화는 사라지고 제재와 보복, 전쟁 따위의 살벌한 단어들만 맴돈다. 

작년 '통일 티셔츠 도안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한 아이는 2040년은커녕 2400년이 돼도 통일되기는 글렀다며 혀를 끌끌 찼다. 온탕과 냉탕을 오간 지난 몇 년 동안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실낱같은 희망도 절망적인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개인적으로 통일교육에 관한 한 학교 교육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걸 직시한 경험이었다. 학교 교육보다는 여론의 관심과 정부의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아가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는 '종속변수'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숨만 내쉬던 지난 여름방학 즈음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북한 이해 교육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위협이 커질수록 평화를 향한 목소리가 더더욱 중요하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운 좋게도 고1 아이들 16명이 참여하게 됐다.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가 굳이 이곳 광주까지 주말마다 내려와 아이들을 만난다는 게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주제와 상관없이 시민단체가 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상이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희망자를 모집하는 일조차 버겁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대입 공부 외에 곁눈질할 여유가 없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순례하는 게 그들의 일과다. 하물며 대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프로젝트 홍보물을 학교 게시판에 처음 붙일 때만 해도 그랬다.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서도 그들이 맨 먼저 묻는 건 학교생활기록부에 반영되느냐 여부였다. 연초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아니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일절 기재할 수 없다.

그런 아이들이 떠난 뒤 제 발로 '진국'들이 찾아왔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여부는커녕 대입의 대자도 꺼내지 않고, 함께하게 해달라고 통사정했다. 북한에 대한 호기심을 찾아온 경우가 다수였지만,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거나 영상 편집에 자신 있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북한에 대해 공부한 뒤의 창작 활동에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각자의 소감 등을 미술 작품이나 영상물 등으로 제작해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도록 구성돼있다. 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피드백까지 받을 수 있어 웬만한 미술 수업보다 나을 성싶다.

'북한'을 궁금해하기 시작한 아이들 

지난 주말 첫 모임을 가진 후 아이들은 예상 밖으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달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북한 하면, 대번에 핵무기와 독재정치, 가난과 굶주림, 김씨 세습 왕조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만 떠올리던 아이들이었다. 

"북한에도 꼬마 아이들이 있고, 웃는 모습이 진짜 귀엽더라고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신기해하는 모습에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북한 아이들은 늘 굶주리고 침울하며 독재정권 앞에 주눅이 들어 있을 줄로만 알았다는 거다. 비쩍 마른 몸에 스포츠형 머리에다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다. 

북한이 혐오하는 나라 중 세 손가락에 든다고 말한 한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 북한은 세상과 단절된 미개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라고 설명했다. 기껏해야 불쌍해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라는 거다. 그들에게 북한은 굶주리면서도 핵 개발에 치중하는 이상한 나라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데, 흡사 북한을 두고 하는 말 같아요."

다른 한 아이는 뜬금없이 교과서의 북한 관련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북한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인식이 교과서에서 비롯된 것 같다며 눈을 흘겼다. 6.25 전쟁의 '원죄'로 인해 이후 북한과 관련된 그 어떤 사안도 악마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북한을 통틀어 들어본 도시란 평양밖에 없고, 아는 인물이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밖에 없는 게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도 꼬집었다. 교과서에 서술된 북한 사회의 모습은 수십 년 전 그대로다. 정치 구조나 교육제도는커녕 지방 행정구역조차 과거의 것을 그대로 적고 있다.

"북한에 대한 진실은 어쩌면 교과서 바깥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모임이 벌써 기대된다는 한 아이는 첫 모임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매조지었다. 교과서는 현실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도 못할뿐더러 특히 북한에 대해선 극히 제한된 이미지만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아이들의 소감을 듣노라니, 역사 교사로서 반성할 대목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정규 교과목에 세계사도 있고 동아시아사도 있는데, 정작 북한의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고작 한국사 교과서의 맨 뒤에 부록처럼 소개되고 있는 게 전부다. 

부러 북한의 역사는 알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일까. 굳이 묻진 않았지만, 아이들은 북한의 역사보다 중국과 일본, 심지어 지구 반대편 로마의 역사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놓고선 통일 염원 운운한다는 건 아이들 앞에서 낯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공부하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섣불리 예측하긴 힘들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맹목적인 편견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것. 

첫 모임을 마친 아이들이 북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몇 가지 나열해본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과 교사인 내가 궁금해하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놀랍고도 반갑다. 물론, 교과서를 통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언뜻 시답잖아 보이지만, 통일을 바란다면 알아야 할 '필수 상식'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또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무얼 배울까. 북한 아이들도 수학여행을 떠날까. 북한에도 대학 서열이 있을까. 북한에도 '수포자'가 있을까. 북한에도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있을까. 학교의 체육대회에는 어떤 종목들이 있을까. 평양 밖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 북한 사람들도 커피를 마실까. 북한에도 도시를 잇는 고속버스가 다닐까. 북한에도 로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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