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컬렉터, 무작정 경매장을 찾아가다

서울문화사 2022. 9.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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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다면 예술 작품이 있는 곳으 로 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아트 열풍이 거센 요즘. 작품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직접 소장하고 아트 테크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경매장이다. 하지만 아직 경매가 생소한 아트 러버들 을 위해 준비했다. 경매에 관한 모든 것!


“유영국의 ‘Work’ 3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지난 8월 24일 케이옥션의 메이저 경매 현장. 사옥 1층 홀에 마련된 경매장은 현장 응찰을 위해 모인 고객과 컬렉터와 응찰을 맡은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꽤 북적였다. 경매장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메이저 경매 도록을 보니 이번 경매에는 작고 20주기를 맞아 재조명되고 있는 추상화 거장 유영국의 작품을 비롯해 이대원, 장욱진, 김창열, 이우환 등 국내 대표 작가의 작품들은 물론 쿠사마 야요이, 나라 요시토모, 스탠리 휘트니 등 외국 작가들의 쟁쟁한 작품들이 낙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매장은 화이트 큐브 형태로, 평소에는 메이저 경매 출품작을 미리 관람하는 전시장으로 사용하다가 경매 당일에 경매 사용 단상과 대리 응찰 직원들이 사용하는 테이블을 비롯해 컬렉터 고객이 앉는 의자를 설치해 경매를 진행한다. 코로나19 여파로 현장 응찰에 참여하는 컬렉터 수는 줄었지만, 대신 온라인과 전화, 서면 응찰 시스템이 구축돼 보이지 않는 컬렉터는 늘었다.

결전의 순간. 숫자가 적힌 패들을 손에 든 컬렉터들이 자리에 앉고 경매사가 단상 앞에 섰다.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당일 경매에는 121점이 출품될 예정이었으나 시작 전에 출품을 취소한 작품이 있어 총 95점이 거래되게 되었다고. 대개 사전에 신청한 서면 응찰 현황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시장에서 거래가 시들해진 작가의 작품은 판매자가 경매 직전 출품을 취소하기도 한다. 유찰되어 불명예 딱지를 달게 되느니 차라리 거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경매 전부터 이미 치열한 눈치작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첫 작품의 응찰이 시작되고, 경매사는 신속하게 경매 거래의 유의점을 설명하며 진행을 이어나갔다. 경매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현장 응찰, 전화·서면 대리 응찰, 모니터를 통한 온라인 응찰 현황을 동시에 파악하고 가장 높은 낙찰가를 제시하는 컬렉터를 가려낸다. 작품가에 따라 낙찰가는 50만원, 100만원, 1000만원 간격 등으로 올라가며, 최고 응찰가에서 다음 응찰이 없으면 가격을 세 번 호명하고 낙찰봉을 내리쳐서 최종 낙찰을 확인한다. 패들을 올리는 현장 응찰자와 대리인, 그리고 모니터를 동시에 확인하고 가장 빨리 의사를 표시한 사람을 알아보는 게 굉장히 어려워 보였지만 주춤하는 순간 없이 순식간에 낙찰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추상화가 이배의 2007년 작 ‘붓질’입니다. 시작가는 900만원입니다. 900, 950, 1000, 1100, 1200, 1300 현장 손님께 1300 받았습니다. 1400, 1500, 전화 손님 1600. 1600 최고 응찰입니다. 1700만원, 전화와 현장, 온라인 1700. 1700 받았습니다, 1800, 1800 또 다른 온라인 최고가 1900. 현장과 전화 1900 확인합니다. 또 다른 온라인 1900. 1900 온라인 최고 응찰가입니다. 2000만원 다시 여쭙고 있습니다. 전화 응찰 더 이상 없으신가요? 2000만원? 확인합니다. 1900. 1900. 1900. 온라인 손님 최고 응찰, 19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일반적인 말하기보다 약 1.5배 빠른 속도로 말하는 경매사의 진행을 들으며 누가 어디서 패들을 드는지 확인하는 사이 어! 하고 낙찰이 확정되는 경우가 부지기수. 경매사의 멘트에서 900, 950, 1000 이렇게 숫자만 들리는 경우는 현장에서 패들 번호를 부를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패들이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응찰가만 호명하는 것.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니 약 2시간 만에 100여 점의 작품이 거래될 수 있다. 경매 현장을 관찰하다 보니 흥미로운 점들도 꽤 보였다. 대리 응찰자 중에 경매사 소속 직원이 있는가 하면 사설 대리 응찰자도 있다. 경매사 소속 직원은 지정된 테이블에 앉아 응찰을 진행하고, 사설 대리자는 컬렉터 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고객의 응찰을 대리한다.

또 전화로 대리 응찰하는 경우 수화기 너머의 고객을 설득하는 짧은 순간 경매사에게 시간을 벌기 위해 모두 똑같은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흥미롭다. 패들을 올리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는 그들의 절실한 마음이 보였달까. 납작한 패들을 눕힌 채 앞뒤로 흔들며 ‘잠깐만 기다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데, 이때 경매사는 매의 눈으로 정말 고객이 고민하는 것인지 대리자의 욕심으로 시간을 끄는 것인지 판단하고 냉철하게 경매를 진행한다.

한 작품당 빠르면 30초에서 수분 동안 경매가 진행된다. 작품을 낙찰받으려고 경매장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경매에서 여러 번 손에 땀을 쥐기도 하고, 또 유찰된 작품에 괜히 아쉽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경합의 순간,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잠깐의 고민으로 더 지불하는 컬렉터들의 통 큰 결단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이날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유영국의 ‘Work’로 3억원에 낙찰됐다. 김창열의 1997년 작 ‘회귀’는 7600만원에, 나리 요시토모의 ‘Untitled’는 1억4000만원의 낙찰가를 알렸다. 고미술품 중 백범 김구의 붓글씨 ‘심잠’이 560만원에서 시작해 2700만원에 낙찰되었는데 추정가보다 두 배나 더 높은 가격으로 가장 치열한 경합이었다.

거장의 대작이라고 해서 경합이 치열한 것도 아니고, 비록 낮은 시작가로 경매에 나왔지만 기존에 검증된 몸값보다 더 좋은 성적표를 받는 리얼한 현장을 목격하고 나니 경매가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작품의 가치에 맞는 자금력을 확보하면 운 좋게 옥석을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경매의 장점으로 희귀하거나, 또 너무 인기가 많아서 갤러리와 같은 1차 마켓에서 구할 수 없는 작품들을 모두 동등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원하는 작품을 구입할 만한 자금력과 경합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경매는 굉장히 매력적인 미술품 거래 방식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에디터 : <리빙센스> 편집부  |   사진 : 정택‧엄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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