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돌아온 '사랑의 시인'
“제목이 조금 낭만적일 뿐, 슬픈 이야기만 가득한 시집”이 나왔다. 등단 22주년을 맞은 진은영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이다. 시인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10년 만에 나온 시집은 출간과 함께 독자들의 환대를 받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시집 제목이 된 시구를 담은 시 ‘청혼’은 2014년 가을, 문예지에 발표된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며 읽히고 있다. 시집으로 출간되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이례적으로 많이 구전되었다. 이미 시인의 청혼을 수락한 독자들이 그다음 말을 기다린 것은 당연하다.
‘사랑의 시인’이라 불리는 진은영 시인은 2000년 등단 이후 대산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8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에 선정’되며 시단 안팎에서 인정받았던 그해 겨울, ‘감각적인 것의 분배:2000년대 시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저항과 투쟁의 공간에 ‘정치의 가능성’으로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 시인은 ‘두리반’ 철거 현장에서의 불킨 낭독회, 작가행동1219, 세월호 유가족 기록 등을 이어갔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한 대담에서 “진은영은 시인이자 실천가였으며, 시의 정치성 논의를 촉발시킨 탁월한 문학이론가”라고 평했다. 이처럼 그의 사랑은 정치적이고, 실천적이다.
시인은 ‘청혼’에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약속한다.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진은영의 사랑은 ‘줄게’ ‘할게’와 같은 반복적인 약속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약속의 내용을 뜯어보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여름의 비를, 아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나로 가득 찼던 시간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왜 고작 이런 것을 약속하는가?
진은영은 ‘사랑’이란 “어긋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하기’가 낳는 불가해한 낙담, 나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발생할 때의 통증 앞에서 ‘미래는 장밋빛일 거야’라는 아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겠다’는 의지만이 정확한 사랑의 태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은영이 끝까지 견지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 역시 이것이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의 이름을 ‘시’라고 칭해온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내겐 자꾸 ‘시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으로 다가왔다. 시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내 안에 느껴지는 감각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시에서 말하는 사랑의 태도는 사실 세계를 향한 각오이기도 한 것이다. “가장 절망한 사람 곁에 있을 때, 더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 곁에 있을 때, 성실하게 옆을 지키겠다는 약속 말고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것만이 우리(공동체) 스스로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끝까지 위로받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하는 ‘어긋남’이 예정돼 있다 해도 시인이 (그의 시에 나온 것처럼) 거듭 ‘여름 비’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다.
10년 만에 나온 네 번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세상 속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닿으며” 채집한 시들을 묶은 책이다. 시인이 “불행이 건들고 가 혼자가 된 이들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시인의 말) 애쓴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9월12일, 진은영 시인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남들은 절필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시집을 냈다”라며 멋쩍어하던 그는 ‘문학이 무슨 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힘주어 반문했고, 어떤 물음에는 ‘나는 확신한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슬픔을 대하는 태도부터 문학의 언어를 회복하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까지 두루 물었다.
10년 만이다.
내 게으름을 10년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로 나타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돼버렸다(웃음).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2012)를 출간하고 학교(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를 옮겨 적응하던 중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와 유가족 인터뷰를 하고 그 기록들을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2015)로 묶어냈다. 작업이 끝나고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이후 건강이 악화돼 수술과 회복의 시간을 거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출간 후 대형 서점의 시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오래 기다린 독자들의 적극적인 화답이다.
게으른 시인을 다정하게 맞아주는 독자들이 너무 고맙고, 많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시인에 대한 반가움 말고 이 시집에 대한 반가움이란 뭘까 싶었다. 사실 제목이 조금 낭만적일 뿐, 슬픈 이야기만 가득한 시집이다. 독자들은 시인 진은영이 아니라 내가 쓴 시의 ‘불행이 건들고 가 혼자가 된 사람들’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진정 ‘환대’가 아니라면 이토록 환하고 다정한 마음을 달리 뭐라 표현하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첫 시 ‘청혼’에서 화자는 조심스럽고 겸손한 약속들로 사랑을 고백한다. 빛나고 희망찬 선언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연인 간의 사랑보다 다자간의 연결감, 연대감을 사랑이라고 말하기를 즐긴다. 사랑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항상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 가장 다른 결과를 낳는다. 나는 돌멩이를 줬는데 그걸 보석이라고 받기도 하고, 나는 소중한 걸 내어줬는데 그걸로 다치기도 한다. 간극이 있다. 그래서 ‘미래는 행복할 거야’ 같은 믿을 수 없는 아첨을 하지 않는 게, 태도밖에 줄 게 없는 가난한 사람의 말일 거라 생각했다. 그는 사랑의 결과가 고통과 실패라 해도 당신 곁에 있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다. 이런 태도의 성실성이 거듭되는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공동체) 스스로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곁에 있겠다’는 약속은 ‘사물이 되겠다’는 시구로도 표현된다(“분노 속에서 네가 무엇도 만질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 단 하나의 사물이 되고 싶다/ 네 손에 잡혀 벽을 향해 던져지며 부서지는 항아리가” -‘죽은 엄마가 아이에게’ 중).
슬픔은 나누면 다른 사건이 된다. 아름답거나 한결 나은 이야기가 된다. 고통은 관통하며 지나가는 것이어서 그것을 겪은 사람은 참담하게 무너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이 완벽한 위로를 해줘서가 아니라 그저 옆에서 ‘내가 당신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겠다’ ‘사물처럼 어디에도 가지 않고 있겠다’고 해주는 것이 고통을 견디게 하더라. 사실 곁에 있어주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위로를 하다가도 정신이 자꾸 딴 데로, 내 관심사로 도망간다. 어떤 존재의 옆을 지키는 건 굉장히 어렵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아픔에 말 거는 시들이 시집의 2부에 담겼다.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유예은 학생과 희생자 가족들을 위한 시이다.
제일 쓰기 힘들었던 시가 생일시(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일에 맞춰 아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시인들이 쓴 시. 진은영 시인은 예은이의 열일곱 번째 생일시를 썼다)인 ‘그날 이후’다. 작업을 하면서 예은이에 대해 내 멋대로 지어내지 않고 그 삶의 흔적들을 충실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예은이의 이름에서 ‘예’가 ‘무지개 예(霓)’라는 작은 사실이나(“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의 페이스북 글들, 친구나 교회 선생님, 가족들이 예은이에 대해 쓴 메모 같은 것들을 충실히 담고 최대한 나의 목소리가 덜 들어가도록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책을 보다가 그때 내가 했던 작업이 사진을 남기는 것과 같은 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진은 어떤 상황을 명확하게 재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왜곡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머니 장례식에서 슬픔에 빠진 롤랑 바르트의 사진을 비평가들이 그를 공격하는 책의 표지로 썼다고 한다. 사진 속 바르트의 참담함은 악의적인 의도로 전혀 다른 이미지로 재현됐다. 하지만 그 사진은 명확한 한 가지 사실을 말한다. 그가 거기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내가 쓴 시도 예은이와 가족들의 고통을 한 톨도 담지 못하거나, 아주 부정확하게 담아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예은이가 세상에 존재했고 열일곱 살이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 ‘그래 그거면 됐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한 번 더 그 아이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시를 써보자고 용기를 내 스무 살을 기념하는 시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를 썼다.
시인은 과거 ‘감각적인 것의 분배:2000년대 시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문단 내에 시와 정치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촉발시킨 당사자다. 우리 사회에서 문학(예술)의 효과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여전할 것 같은데.
경험적으로, 문학이 힘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에는 ‘나는 문학에 대해 전혀 몰라요. 제가 읽은 건 자기계발서뿐이에요’라고 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시를 보여주면 그 아름다움에 감동해서 순식간에 시인이 되어버린다. 무슨 근거로 시가 사람의 마음을 건들지 않는다는 건가? 시집이 안 팔려서? BTS 공연처럼 수십만 명을 동원하는 시낭송회가 불가능하니까? 오히려 중요한 건 문학을 접촉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다만 내가 〈문학의 아토포스〉(앞서의 논문과 그 뒤 시인이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쓴 논문 아홉 편을 묶은 책)를 통해 제기한 문학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 말하자면, 그때 내 생각이 너무 소박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든다.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 집단지성의 힘이 더 나은 사회와 변화를 위해 발휘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흘러 다니는 힘이 운 좋게 어떨 땐 좌파에, 어떨 땐 우파에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 차원에서 정치적 활동이 이루어질 때 함정이 있다. 지금 팬덤 정치 같은 걸 보면 정치적 입장을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을 ‘지켜주겠다’고 한다. 진보 정권에 대한 실망이 크면 더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해야 하는데 반대다. 우리가 뭔가 놓친 게 있으니까 정치적 알맹이는 없는데 대중의 흐름에 따라서 정치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거다. 이럴 때 문학의 언어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여전히 문학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보나?
이런 예를 들어보고 싶다. 내가 일하는 상담대학원대학교에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학생으로 많이 온다. 한 교수가 교사들의 고민을 들었는데, 요즘 학생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데 너무 갑자기 죽는다는 거다. 왜 ‘갑자기’라는 느낌이 드느냐면 유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얘기를 듣고 그 교수님은 아이들이 자기들의 고통을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죽는 순간에 유서를 쓰지 못한다고 봤다. 아이들이 아는 단어가 ‘어쩔티비’처럼 카톡이나 SNS에서 쓰는 단어들인데 이건 유서에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닌 거다. 자기 고통을 표현하는 일이 마지막 순간까지 좌절되기 때문에 유서가 없고, 그러니 남이 보기에 그냥 맥없이 죽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목숨을 끊었겠나. 그래서 문학의 언어를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이 일은 문학이 꼭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의 편견으로 청소년의 어휘 수준을 문제 삼는다고 보일 수 있을 텐데.
아, 그런 뜻이 아니다. 문학작품의 언어는 고급하고, ‘어쩔티비’는 고급하지 못하다는 게 아니다. ‘어쩔티비’는 주로 외향적 쓰임을 갖는 또래 언어이고, 또래 언어는 언어생활의 중요한 일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아이들에게 그 언어만 있다는 건 그들이 느끼는 구체적 고통을 말할 수 있는 다른 관계나 공동체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단어가 있으려면 그 단어를 들려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청자를 갖지 않는 단어는 죽은 단어다. 그러니까 단어를 돌려주자는 건 어휘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의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관계, 그런 다른 시간과 장소를 아이들이 구성할 수 있도록 돕자는 뜻이다. 나는 시 쓰는 사람이니까 시를 통해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학작품에는 다양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사랑과 고통을 표현하는 삶의 언어가 가득하지 않나. ‘어쩔티비’든, 소위 말하는 고급문학의 언어든 특정 언어가 우리에게 필요한 다양한 언어들을 지우고 삶의 언어를 획일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주식과 부동산의 단어로만 채워진 삶에 답답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분들이 꽤 많다.
한 인터뷰에서 재능의 위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될 것을 강조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우려도 하던데 나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부추기고 싶다. ‘좋은 문학’이라는 범주 아래에는 전문가주의가 있다. 문학만 그런 게 아니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르는 전문가주의는 현대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건 다른 말로 소비자주의이기도 하다. ‘너희는 독자로 남아 있어, 당신들은 소비자로 남아 있어’라는 말이다.
자신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버지니아 울프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펜으로 자기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게 문학’이라고 말했다. 크레파스 그림도 아름답지만 섬세한 선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펜처럼 세밀하게 자기 존재를, 상심과 변덕, 절망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나는 시의 성김이 좋다. 시인 자신이 상상도 못한 수만 가지 감정을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시에 덧붙여준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 잘 못 만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시가 주는 이런 아름다움이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가 과연 쓸 만한 가치가 있었나’라는 후회는 없나.
간절한 말이었지만 내뱉고 나서 후회하는 경험이 없나(웃음)? 뭘 하려고 내가 이런 말을 했나 자괴감 들 때는 당연히 있다. 문학 상담할 때 시를 안 써본 학생들에게 시작(詩作)을 시키면,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제일 많이 말한다. 그런데 그 시에 다른 동료들의 말이 덧붙여지면 위로받고, 그래도 말하길 잘했다고 말한다. 말한다는 것은 응답을 구하는 행위다. 응답이 오면, 그걸로 괜찮은 거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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