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강 거슬러 온 '한산도함'.. 반목의 기억 지워내다 [짜오! 베트남]

정재호 입력 2022. 9. 2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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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韓해군 첫 훈련함, 호찌민 입성
한산도함, '2022 순항훈련' 첫 기항지로 베트남 선택 
 베트남 위탁생도 '연결고리', 양국 군사 우호 이어가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베트남 남부 사이공강의 모습. 비엣리더 홈페이지 캡처

베트남의 사이공강은 그 속을 알기 어렵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스콜)는 황토물을 쉼 없이 공급하고, 침전물은 멈추지 않고 쌓이고 흩어지길 반복한다. 그래서 사이공강을 오가는 배들은 넓적하고 평평한 선체와 낮은 흘수선(선박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선)을 가진 바지선뿐이다. 항해 지점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기에 수면 아래를 향한 도전 대신 강 그대로의 특성에 적응한 것이다.

지난 2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를 떠난 한국의 첫 자체 제작 교육훈련함 '한산도함'은 그런 사이공강을 거슬러 오르기로 결정했다. 한산도함은 선체 높이만 아파트 13층(18m)에 달하고, 갑판 아래로도 지하 4층 규모의 깊이를 가진 대형 함선(만재 6,235톤)이다. 강 위를 얇게 떠다니는 바지선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강을 항해하는 접근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2018년 11월 한국 해군의 첫 훈련함인 한산도함이 울산 현대중공업 부두에서 진수되고 있다. 해군 제공

한산도함은 우선 출항 전 한국의 A방위산업체로부터 사이공강 수심에 대한 세부정보를 구했다. 도착지는 사이공강 중심에 위치한 호찌민항. 한산도함 승조원들은 사이공강 최신 정보를 전자시스템에 입력, 최적의 항해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어 이들은 사이공강 종이지도에 손으로 일일이 가장 안전한 수심을 다시 찍어가며 강을 헤쳐 나갔다.

이익을 내야 하는 대형 상선이라면 모험 대신 우회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한산도함에는 한국 해군의 미래를 책임질 77기 해사생도 164명이 탑승해 있었다. 전투가 자연환경을 봐가며 발생할 리 없는 법이며, 밑이 보이지 않는 강을 개척하며 항해하는 것도 교육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산도함은 그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이 탑재돼 있었다.


韓사관생도, 59년 만에 자국 교육선 타고 호찌민 입항

지난 14일 한국이 자체 제작한 첫 교육훈련함인 '한산도함'이 사이공강 중심부에 위치한 베트남 호찌민항에 정박하고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한산도함은 예정대로 지난 14일 오전 호찌민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국이 자체 제작한 교육함이 과거 한국군이 지키고자 했던 남베트남 정부의 수도 사이공, 현 호찌민에 처음으로 닻을 내린 것이다. 1963년 미군의 배를 얻어 타고 순항훈련을 받던 중 구 사이공을 마지막으로 들렀던 해사생도들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59년 만의 위풍당당한 귀환이었다.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입항한 한산도함의 수장인 강동구(오른쪽) 전단장이 베트남 해군 장교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함선에서 내린 한국 해군 앞에는 베트남 해군 고위 장교들과 해사생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 전쟁 상대국이라는 기억의 힘은 종전 47년이 지나도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내심 긴장되던 순간, 한산도함의 강동구 전단장(준장)은 도열한 베트남 해군을 바라보며 뜻밖의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응우옌안'이 어디 있어? 걔가 진짜 제일 반가울 텐데."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정박한 한산도함 선상에서 77기 해사생도인 베트남인 응우옌안이 사이공강을 배경으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강 전단장이 살갑게 부른 77기 해사생도 응우옌안(25)은 우리 군 대열 뒤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4년 전 해군 장교인 부친과 형의 뒤를 쫓아 베트남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안은 우수한 성적으로 외국해군 위탁교육 대상자로 선정된 인물이었다.

당시 안은 러시아와 인도 등 다수의 나라로 갈 수 있었으나 그의 최종 선택은 한국이었다. 안은 그 이유에 대해 "단기간에 성장을 이룬 한국 해군을 배우는 것이 베트남의 미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산도함에는 안 이외에도 3명의 베트남인 위탁 생도들이 더 있었다. 우리가 몰랐을 뿐, 한국과 베트남 해군은 이미 2009년부터 인력 교류를 이어왔다. 현재 안의 베트남 선배 10명은 한국 해사 임관 이후 자국 해군에서 복무 중이다.

지난 17일 한국 해군의 첫 교육함인 한산도함과 함께 베트남을 찾은 군수지원함 대청함(아래)이 베트남 해군의 HQ-18함과 연합해상훈련을 하고 있다. HQ-18은 지난 2017년 한국이 양도한 구 김천함이다. 해군 제공

베트남 생도들은 양국 군사 우호의 상징이자 가교 역할을 충실히 했다. 실제로 안이 소속된 77기 생도들은 3박 4일의 호찌민 정박 기간 중 베트남 해군사령부, 125여단과 활발히 교류하며 양국의 군사경험을 공유했다.

한산도함이 베트남을 떠나던 지난 17일에는 양국 해군의 연합해상훈련도 진행됐다. 당시 훈련에 참가한 베트남의 군함은 한국이 지난 2017년 양도한 김천함이었다. 베트남 해군은 김천함 외에도 2018년 퇴역한 한국의 여수함도 운용 중이다.


최첨단 교육 시설 갖춘 한산도함… 전시엔 병원선으로 활약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정박한 한산도함의 조항실습실의 모습.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한산도함을 방문한 베트남 해군들은 첨단화된 자체 교육 설비에 감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이들은 함선 4층 전면부에 위치한 조항(배의 방향을 움직이는 것) 실습실에서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실습 시작과 동시에 떠오른 스크린에는 세계 주요 항구의 실제 모습이 시각화돼 나타났으며, 실습자의 조작에 따라 속도와 방향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의 움직임까지 확인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산도함에는 조항 외에도 △전투지휘 △중앙조정 △음탐 △전자전 실습실 등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실내 영상교육이 가능한 대형 강의실(200명 동시 참석) 및 중형 강의실(80명), 두 개의 소형 강의실(40명)도 완비된 상태였다.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정박한 한산도함의 72㎜ 함포의 모습.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교육함이라고 해서 기본적인 전투 능력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었다. 한산도함은 76·40㎜ 함포 2문이 발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대유도탄 기만체계와 어뢰 발사대까지 탑재돼 있었다.

디젤엔진 2대와 가스터빈 1대에 기반한 기동능력 또한 준수했다. 최대속력 시속 43㎞, 순항속력 시속 33㎞에 달하는 한산도함은 순항속력 기준으로 1만3,000㎞를 한 번에 항해할 수 있다.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입항한 한산도함에 마련된 체력단련실의 모습.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한산도함은 젊은 생도와 장병들이 장시간 항해에 지치지 않도록 각종 시설도 완비했다. 헬스 기구가 가득한 체력단련실과 도서관 및 콘솔게임실은 고된 훈련에 지친 승조원들의 '멘털'을 책임지는 장소로 활용 중이었다.

식사 역시 훌륭했다. 한산도함은 찐밥에 뭇국으로 대표되는 과거 군 급식에서 벗어나 현지 식재료로 메뉴를 다양화했다. 특히 취사부는 함선을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을 대접하기 위해 퓨전 한식 메뉴까지 능수능란하게 만드는 수준에 도달했다.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입항한 한산도함 내부에 긴급환자 수송을 위한 고속단정이 출동 준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평시 교육 목적으로 쓰이는 한산도함은 전시에는 병원선으로도 기능한다. 일반 군함도 응급치료가 가능한 시설 정도는 갖추고 있지만, 한산도함은 최신 의료기기가 설치된 다목적 수술실과 60개의 회복 병상이 마련돼 있다.

이와 관련 한산도함 승조원들은 함선 후미에 위치한 고속단정 2대를 운용하는 훈련을 항시 진행하고 있다. 타 함선의 중상자를 고속단정으로 태우고 수술실로 이동하는 시간을 1초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한-베트남, 단편적 기억보다 진심 어린 이해가 중요"

한국 해군의 한산도함(위)과 대청함이 '2022 순항훈련' 해상 기동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호찌민을 떠나 말레이시아 클랑에 정박했던 한산도함은 28일 현재 인도 첸나이를 향해 항해 중이다. 이후 이들은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파푸아뉴기니(포트 모르즈비) △호주(시드니) △뉴질랜드(오클랜드) △피지(수바) △미국(하와이·괌) 등으로 기항한 뒤 110일에 달하는 '2022 순항훈련'을 마무리한다.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항에 입항한 한산도함에서 진행된 베트남 해군과의 입항 환영식장에 한국 해군사관학교 77기 생도들이 도열해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다시 대양으로 나간 안과 한국의 해사생도들은 베트남 훈련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뒤늦은 궁금증에, 국적이 다른 이들은 모두 같은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양국 해군 교류 행사에 참가하면서 느낀 건 단 한 가지다. 베트남전과 무관하게 같은 77기 생도로 살아가는 우리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노력을 진심으로 이어간다면 양국은 앞으로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반목의 기억 등을 꺼낸 냉전주의적 질문이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기록될 양국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영역임을, 젊은 양국의 생도들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호찌민=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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