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쿠바의 동성결혼 합법화
일당독재 국가들은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투표로 의견을 묻는 경우도 드물지만, 투표를 실시하면 대개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 그런 점에서 쿠바의 최근 동성혼 합법화 국민투표는 특이하다. 쿠바 전역에서 지난 25일 동성커플의 결혼과 자녀 입양권리 등을 규정한 새로운 가족법을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유권자 74.1%가 투표해 찬성 66.9%, 반대 33.1%의 결과가 나와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공산당이 추진한 의제여서 가결되지 않았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이 기권하고, 투표자 3분의 1이 반대 의견을 표출한 것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대표는 대부분 쿠바 내 가톨릭 신도들이 던진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 인권의 문제를 투표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가톨릭교회의 반대는 예상된 바이다. 그러나 쿠바라는 국가의 과거에 비추면 동성혼 합법화는 엄청난 변화이다. 피델 카스트로 시절에는 동성애자들을 강제수용소에 보내기도 했다. 변화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공산당이 진보적 색채를 과시함으로써 시민들의 정치·경제적 불만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물러난 전임 대통령 라울 카스트로의 딸 마리엘 카스트로 국가성교육센터장이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도 한몫했다. 코스타리카와 에콰도르 등 주변 국가들이 잇따라 동성혼을 합법화한 영향도 있다. 공산혁명 이후에도 자유로운 영혼을 중시하는 전통이 유지돼온 것도 작용했을 법하다. 그 결과 쿠바는 전 세계에 몇 안 남은 공산권 및 일당독재 국가를 통틀어 동성혼을 합법화한 매우 드문 경우가 됐다.
쿠바는 1991년 옛 소련 해체 후 위기를 맞았지만 생태농업과 무상의료 등 정책을 펴며 생존해왔다. 핵무장과 고립의 길을 선택한 북한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이번 국민투표로 북한과 다른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미국이라는 체제안보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이 나라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은 비단 북한만이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북한 인권 문제를 늘 거론하면서도 정작 자국의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도외시하는 한국인들도 느낄 부분이 있지 않을까.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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