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의인상 통해 선한 영향력"..장기 선행자만 20명

2022. 9. 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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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어려운 부부에게 무료 예식을 지원하고 있는 신신예식장 대표 백낙삼·최필순씨 부부는 남은 여생은 우리가 결혼시킨 부부들이 잘 살고 있는지 한 번쯤 가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LG 의인상은 우리 시대에 착하고 의로운 시민에게 수여되는 대표적인 상의 기준이 됐다. 첫 의인상이 제정된 2015년 9월 이후 만으로 약 7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이후 국내 타 기업과 기관에서 비슷한 성격의 상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원조는 LG 의인상이다. 비슷한 활동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오히려 LG가 구축한 선한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파급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LG복지재단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고 구본무 회장의 뜻을 반영해 2015년 9월 첫 LG 의인상을 수여한 이후 2022년 11명의 의인을 선정하는 등 현재까지 총 180명의 의인들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했다.

특히 구광모 LG 대표 취임 이후 2019년부터 의인상 수상 범위를 묵묵히 선행과 봉사로 귀감이 된 시민들로 확대해 선한 사회적 영향력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19년 이후 새로 만들어진 장기선행 분야 수상자만 20명으로 2019년 이후 전체 수상자(89명)의 약 5분의 1(22%) 수준이다.

지난해 9월 의인상을 받은 박춘자 할머니는 50여년간 매일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3000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두 기부하고, 사망 후 남을 재산마저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녹화유언도 남겼다. 40여년간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김밥 장사를 그만둔 후에는 11명의 지적 장애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20여년간 친자식처럼 돌보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남을 도울 때 가장 즐겁고, 장애인들을 도울 땐 있던 걱정도 싹 사라진다”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박 할머니는 의인상 수상 후 지난 1월 청와대 초청행사에 참석해 대통령 부인의 손을 잡고 감격에 겨워 펑펑 운 사연이 뒤늦게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의인상을 받은 신신예식장 대표 백낙삼씨는 54년간 형편이 어려운 1만4000쌍 부부에게 무료 예식을 지원하고 있다.

백씨는 1967년부터 경남 마산에서 예식장을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예비 부부들이 최소 비용을 들여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가난 때문에 결혼식을 미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돈이 없어 식을 못 올리는 예비 부부들이 부담 없이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사진값 외에는 식장 대관을 비롯한 예식 전반에 대한 비용은 받지 않았다.

무료 결혼식을 이어가기 위해 백씨와 그의 아내는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건물 관리는 물론 식장 청소·주차까지 모두 직접 챙기고 있다. 이곳에서 인연을 맺은 부부가 1만4000여쌍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저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하루하루 운영하다 보니 어느덧 50년이 흘렀다”면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예식장을 잘 운영하고, 여생은 아내와 우리가 결혼시킨 부부들이 잘 살고 있는지 한 번쯤 가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서 매일 아침 등굣길 아이들에게 무료로 빵과 요구르트를 나누어주고, 지역사회 10여개 장애인 복지시설 및 자활센터에 매주 빵 나눔을 이어온 ‘빵식이 아재’ 김쌍식씨는 지난해 8월 LG 의인상 수상 이후 해당 기사를 접한 한 방송프로그램에 10월 출연해 LG 의인상을 언급하면서 그의 선행과 LG 의인상이 재조명된 바 있다. 김씨는 “어릴 때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나처럼 배고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빵 봉사를 시작했다”면서 “아침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조금 더 많이 빵을 구우면 된다. 혼자 살아 큰돈 들어가는 데도 없어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계속 빵을 나눠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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