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교도소 암매장 발굴에..5·18 행불자 아들 "우리 아버지도"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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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옛 광주교도소에 묻혀 있던 유골이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의 것으로 확인되자, 또 다른 5·18 행방불명자 자녀가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회견에는 실종자 최영찬(5·18 당시 50살)씨의 아들 승철(59)씨와 옛 광주교도소에 구금당했던 강길조(80) 광주교도소 생존자협의회 회장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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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등 아들 찾아나선 아버지 끝내 행불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 묻혀 있던 유골이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의 것으로 확인되자, 또 다른 5·18 행방불명자 자녀가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5·18부상자회는 28일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오월기억저장소에서 회견을 열어 신속한 실종자 조사를 촉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실종자 최영찬(5·18 당시 50살)씨의 아들 승철(59)씨와 옛 광주교도소에 구금당했던 강길조(80) 광주교도소 생존자협의회 회장이 참여했다.
최승철씨는 “1980년 5월18일 사직공원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길을 막고 방망이로 머리를 때렸다”며 “정신없이 맞다가 옛 전남도청으로 끌려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시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5·18 직후 풀려났는데 아버지도 계엄군에게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고 들었다”며 “암매장 의혹이 있는 곳마다 찾아다녔지만 지금도 아버지를 못 찾았다. 꼭 찾아서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부상자회는 승철씨가 끌려간 직후 아버지 최영찬씨는 경찰, 군부대 등으로 아들을 찾아 나섰고,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1980년 5월20일 전남대 앞에서 시위하다 붙잡혀 다음날 광주교도소로 끌려갔다”며 “체포된 다른 시위자들과 함께 교도소 가마니 창고에 갇혔는데 이송 과정에서 11명, 창고 안에서 41명이 죽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매일 새벽마다 헬기가 와서 주검을 싣고 갔다. 아마 보안이 철저한 다른 군부대로 옮긴 것 같다”고 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광주교도소 유골 확인으로 ‘암매장은 없다’는 신군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5·18조사위는 행불자를 1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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